“내면을 바라보라”… 프리드리히가 건네는 침묵의 위로 [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수정 2026-09-07 01:00
입력 2026-09-07 01:00
독일 낭만주의 화가 프리드리히
자연 앞에서 느끼는 두려움·경외감바다 앞 수도승, 미미한 존재 실감
고독은 자신을 되찾는 특별한 시간
그림 속 인물 뒷모습은 ‘공감’ 형성
자연·우주에 신이 존재한다는 철학
변치 않는 신앙과 희망 곳곳에 암시인공지능(AI)과 알고리즘이 세상을 이끄는 초효율성의 시대다. 질문을 던지면 단 몇 초 만에 답이 돌아오고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고 효율적으로 움직인다. 그러나 끊임없는 알림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의 뇌는 쉽게 지치고 내면의 목소리는 점점 희미해진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생각의 스위치를 잠시 끄고 온전한 자신을 되찾고 싶다면 독일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어 다비트 프리드리히(1774~1840)의 작품 앞에 서 보길 권한다. 그의 화폭에 담긴 침묵의 언어는 조용히 일깨워 준다. 진정한 성장이란 쉼없이 앞만 보며 달려갈 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소음에 귀를 닫고 내면을 바라보는 순간에 비로소 시작된다는 것을 말이다.
첫 번째 명언: “화가는 자기 앞에 있는 것뿐만 아니라 자기 내면에서 보는 것도 그려야 한다. 만일 내면에서 아무것도 볼 수 없다면 앞에 있는 것을 그리는 일도 그만두는 게 낫다.”
참으로 단호한 말이다. 프리드리히는 왜 화가에게 눈앞의 풍경보다 먼저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라고 했을까. 대상을 사진처럼 완벽하게 재현해 내는 뛰어난 기술이 있다 한들 그 안에 화가가 느낀 감정과 성찰이 담겨 있지 않다면 그림은 생명력을 잃은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스스로 감동하지 못할 바엔 차라리 붓을 꺾어 버리겠다는 그의 결연한 예술관은 다음 명언으로도 이어진다. “육체의 눈을 감으라. 그러면 마음의 눈으로 먼저 당신의 그림을 보게 될 것이다.”
눈에 보이는 물질세계 너머에서 영혼의 본질과 영원성을 찾으려 했던 프리드리히의 철학은 실제 캔버스 위에서 어떻게 펼쳐졌을까. 그의 대표작 ‘바닷가의 수도승’①(도판 1) 앞으로 함께 다가가 보자. 이 작품은 19세기 말에 제작되었지만 놀라울 만큼 현대적이다.
가로로 길게 펼쳐진 텅 빈 모래사장, 무겁게 일렁이는 짙푸른 바다, 화면 대부분을 뒤덮은 회색빛 하늘이 강렬한 3면 분할 구도를 이루고 있다. 지금이야 무척 간결하고 세련돼 보이지만 극도로 절제되고 대담한 구성은 당시에는 충격적인 시도였다.
전통적인 풍경화를 떠올려 보자. 대개 화면 양옆에는 커다란 나무나 바위가 배치되어 있다. 그것들은 창틀이나 무대의 막처럼 풍경의 경계를 만들어 주고 관람객이 자연을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시선을 화면 안에 붙잡아 두는 역할을 했다. 프리드리히는 우리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던 틀을 과감하게 걷어냈다. 보호막이 사라지자 그림 속 풍경은 캔버스의 경계를 뚫고 우주 공간처럼 끝없이 확장된다.
우리는 더이상 멀리 떨어져 그림을 바라보는 수동적인 구경꾼이 아니다. 차가운 바닷바람이 얼굴을 세차게 스치고 사방이 탁 트인 해변 한가운데에 홀로 던져진 기분이 든다. 끝을 알 수 없는 거대한 설산이나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몰아치는 폭풍 앞에 서 있다고 상상해 보자. 거대한 자연 앞에서 한없이 두렵고 무력해지면서도 동시에 가슴 깊은 곳에서 경외감이 솟아오른다. 공포와 감탄이 뒤섞이며 순간적으로 숨이 멎는 듯한 강렬한 떨림, 이것이 바로 철학에서 말하는 숭고다.
프리드리히는 자연을 보여 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관람객을 화면 속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게 하고 광대한 자연 앞에서 느끼는 두려움과 경외감을 온몸으로 체험하게 한다. 이제 시선을 화면 아래쪽으로 내려보면 카푸친 수도회의 옷을 입은 수도승이 홀로 바다를 마주하고 서 있다.
그는 왜 쓸쓸한 해변에 홀로 서 있는 것일까. 프리드리히는 아무런 답도 들려주지 않는다. 다만 무한한 세계를 마주한 인간의 뒷모습을 침묵 속에 세워 놓았을 뿐이다. 광활하고 압도적인 대자연과 하나의 작은 점처럼 묘사된 수도승의 크기 차이는 인간이 얼마나 미미하고 유한한 존재인지를 실감하게 한다.
프리드리히가 선보인 단순한 색면 분할과 대담한 여백은 현대미술의 거장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특히 20세기 색면추상화의 대표작가 마크 로스코의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 구체적인 형상을 지우고 거대한 색면만으로 관람자를 명상의 세계로 이끈다는 점에서 두 화가는 서로 맞닿아 있다.
두 번째 명언: “자연을 온전히 느끼고 사색하기 위해서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프리드리히는 완벽한 고요 속에 홀로 머무를 때 자연이 건네는 침묵의 언어를 온전히 알아들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에게 고독은 세상의 소음을 잠시 내려놓고 자연과 영적으로 교감하며 잃어버린 자기 자신을 되찾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이러한 그의 철학을 보여 주는 일화가 있다.
1821년 프리드리히는 오랜 친구인 러시아의 시인 바실리 주콥스키로부터 스위스로 함께 여행을 떠나자는 제안을 받았다. 장엄한 알프스의 풍경을 함께 감상하자는 다정한 권유였지만 그는 거절하며 이런 취지의 답장을 보냈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에 온전히 몰입하고 구름과 바위와 하나가 될 때 비로소 진정한 내가 될 수 있습니다. 고독은 자연과의 소통에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는 말뿐이 아니었다. 실제로 그는 독일 작센의 깊은 숲 우테발더 그룬트로 들어가 일주일 동안 사람을 만나지 않은 채 홀로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오직 고독 속에서 대자연과 완벽한 합일을 이루고자 했던 그의 태도는 걸작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②(도판 2)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짙은 녹색 코트를 입은 한 남자가 지팡이를 짚고 가파른 바위 꼭대기에 홀로 위태롭게 서 있다. 그의 발아래로는 새하얀 안개와 구름이 거대한 파도처럼 굽이치며 요동치고 있다. 그는 험난한 산행 끝에 정상에 오른 승리자일까, 아니면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는 삶의 갈림길 앞에 선 방랑자일까?
이 그림에서 가장 눈에 띄는 요소는 남자가 우리를 등지고 서 있다는 사실이다.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지금 무엇을 느끼는지 알 수 없다. 바로 그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남자의 어깨 너머로 눈길을 옮겨 그가 바라보는 안개 바다를 함께 내려다보며 바위 끝에 서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프리드리히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화가 카를 구스타프 카루스는 뒷모습이 관람자를 그림 속 인물의 자리에 서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프리드리히가 즐겨 사용한 뒷모습 기법, 즉 뤼켄피구어는 관람자의 감정을 깊숙이 끌어당겨 그림 속 인물의 고독에 동화되게 만드는 강력한 공감의 장치였던 것이다.
세 번째 명언 : “신성은 어디에나 존재하며 심지어 모래알 하나에까지 깃들어 있다.”
이 문장 속에는 그의 예술을 지배했던 핵심 철학인 자연과 우주 만물 안에 신이 존재한다는 범신론이 담겨 있다. 독실한 루터교 신자였던 그는 이 사상을 깊이 받아들여 대자연과 신, 인간의 영혼이 하나로 연결된 낭만주의적 예술관을 꽃피웠다.
그런데 그의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대자연의 경이로움 이면에 고요와 쓸쓸함, 나아가 서늘한 죽음의 기운마저 느껴진다. 그 감정의 뿌리를 따라가다 보면 프리드리히가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아야 했던 어린 시절의 비극과 마주하게 된다.
1774년 북독일의 해안 도시 그라이프스발트의 엄격한 루터교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감당하기 힘든 상실의 고통을 연이어 겪었다. 일곱 살에 어머니를 잃고 그 뒤로 두 명의 누이마저 병으로 떠나보냈다. 가장 참담한 사건은 그가 열세 살이 되던 겨울에 일어났다.
얼어붙은 강 위에서 동생과 스케이트를 타던 중 프리드리히가 그만 얼음 밑으로 빠졌다. 그때 동생이 그를 구하기 위해 몸을 던졌고 자신은 살아났지만 동생은 차가운 물 속에서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날 이후 극심한 상실감과 살아남은 자가 짊어져야 할 죄책감은 평생 그의 삶을 짓눌렀고 그의 예술을 관통하는 주제가 되었다.
고통의 그림자를 안고 살던 그는 스물네 살이 되던 1798년 자신의 운명을 바꿀 도시 드레스덴으로 이주하게 된다. 당시 드레스덴은 시인과 화가, 철학자들이 모여 인간의 감정과 자연, 영혼의 세계를 뜨겁게 논하던 낭만주의의 심장과도 같은 곳이었다. 드레스덴에서 그는 낭만주의의 핵심 인물들과 교류하며 자신의 예술관을 더욱 단단하게 벼려 낸다.
특히 “자연은 보이는 정신이며 정신은 보이지 않는 자연이다”라고 선언했던 철학자 셸링의 사상은 프리드리히의 화폭에 결정적인 숨결을 불어넣어 주었다. 성장기의 상처와 독실한 기독교 신앙, 낭만주의 철학이 하나의 결정체로 응축된 걸작이 ‘교회가 있는 겨울 풍경’③(도판 3)이다.
화면을 바라보면 온통 흰 눈으로 뒤덮인 삭막한 겨울 풍경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보통 예술작품에서 겨울은 죽음을 상징하지만 프리드리히는 황량한 겨울 한가운데 희망의 씨앗을 심어두었다. 화면 앞쪽을 자세히 살피면 한 남자가 눈 덮인 바위에 기대어 두 손을 모은 채 기도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 옆 눈밭에는 두 개의 목발이 버려진 듯 놓여 있다.
목발은 그가 불편한 몸으로 살아왔음을 암시하는 도구이며 동시에 그가 세속에서 평생 짊어져야 했던 무거운 짐을 마침내 내려놓았다는 표식이기도 하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보면 전나무 사이로 예수의 십자가상이 고요히 서 있다. 십자가 형태의 전나무는 저 멀리 안개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고딕 교회의 첨탑과 서로 닮아 있다. 십자가와 교회가 보이지 않는 길로 이어지며 고통받는 인간의 영혼을 현실에서 천상의 세계로 이끌고 있다.
전나무 역시 중요한 상징이다. 혹독한 겨울에도 푸른빛을 잃지 않는 전나무는 죽음을 넘어 이어지는 영원한 생명과 변치 않는 신앙, 다시 찾아올 희망을 암시한다.
오늘날 우리는 프리드리히의 작품에 깊이 위로받고 있지만 정작 그의 생애 끝자락은 참으로 고단하고 외로웠다. 눈에 보이는 현실과 자본만을 좇던 시대의 거센 흐름 속에서 보이지 않는 영혼과 신성을 그린 그의 작품은 철저히 외면당했다. 병과 가난까지 겹치면서 그는 쓸쓸한 말년을 보내야 했다. 사후 그의 작품은 다시 주목받았지만 독일 민족주의 이미지로 해석되어 나치의 문화 선전에 이용되는 불행도 겪었다.
하지만 위대한 예술은 긴 침묵 속에서도 스스로 깨어나는 법이다. 철저한 고립 속에서 그는 이런 묵직한 말을 남겼다. “나는 시대의 유행이 내 신념에 반할 때 결코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주위에 고치를 틀 것이다. 시간만이 그것이 찬란한 나비일지 아니면 구더기일지 보여 줄 것이다.” 결국 시간은 프리드리히의 편이었다.
오늘날 그는 독일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되살아났다. 그가 스스로를 감쌌던 캄캄한 침묵의 고치는 마침내 찬란한 나비의 날개가 되었다.
이제 끝으로 ‘떠오르거나 지는 해 앞의 여인’④(도판 4) 앞에 잠시 서 보자. 두 팔을 벌려 찬란한 태양 빛을 맞이하는 여인의 뒷모습을 응시하는 순간 우리는 신성한 빛과 하나되는 기쁨을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그 순간 우리 안에서 조용히 날갯짓을 시작하는 햇살처럼 눈부신 나비 한 마리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이명옥 사비나 미술관장
2026-09-07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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