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로의 아침] 네팔 홍수와 기후변화

신진호 기자
수정 2026-09-04 01:08
입력 2026-09-04 01:08
네팔 대홍수에 기후변화 논쟁
“기후는 원래 변해” 반대론 들썩
문제는 빠른 속도와 심한 진폭
빈곤국과 취약층에 더 큰 피해
네팔과 중국 접경 지역에서 산사태 홍수가 덮치는 순간을 담은 영상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처참했다. 개미보다도 작게 보이는 사람들이 안간힘을 써서 달아나 보지만 몇 층 높이의 건물을 집어삼킬 정도로 거대한 토석류가 순식간에 밀려드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어떤 재난영화도 이보다 끔찍하지 않았다. 차라리 인공지능(AI)으로 생성된 가짜 영상이길 바랐다.지금까지 파악된 바로는 히말라야 고지대 봉우리 사면에서 암반이 무너져 내리면서 거대한 빙하 덩어리가 떨어져 나갔고, 강줄기로 유입된 대량의 물과 빙하 잔해, 흙과 모래가 좁은 계곡을 따라 폭발적인 기세로 하류를 덮쳐 홍수가 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한꺼번에 많은 양의 빙하와 토사가 유입되면서 자연댐이 형성돼 강줄기가 막히고 호수가 생겨났다가 자연댐이 부하를 못 견디고 붕괴하면서 또 홍수가 발생할 위험도 남아 있다.
이번 재난이 기후변화의 영향을 생생히 보여 준다는 반응이 나온다. 아직 본격적인 조사와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이번 홍수를 촉발한 붕괴의 직접적인 원인이 기후변화 때문이라고 단정 짓기엔 이르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기온 상승과 빙하 융해가 이번 재난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엔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기온 상승으로 가파른 사면을 받치던 얼음의 지지력이 약해지고 동결과 해빙, 강수 패턴이 달라지며 이것이 산사면을 약화시켜 대규모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인다는 설명이다.
한편에선 반대론자들도 들썩이고 있다. 소셜미디어(SNS)에는 “이번 사태를 배출가스 탓으로 돌리는 것은 또다시 ‘기후 사기’에 편승하려는 것”이라는 글이 올라왔고, 미국 폭스뉴스 기사에도 “지구온난화론자들은 기후가 원래부터 계속 변해 왔다는 사실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라는 댓글이 달렸다.
대표적인 기후변화 반대론자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네팔 홍수 사태가 보도된 직후 자신의 SNS에 며칠 전 올렸던 기후변화 정책 폐기 기사를 다시 끌어올렸다. 네팔 홍수가 기후변화와 관련 없다고 강조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기후변화를 놓고 오랫동안 여러 쟁점이 맞부딪쳐 왔다. 기후변화의 현실을 인정하더라도 각자의 이해관계를 조정해 유의미한 합의점과 실질적인 행동을 도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도 잘 안다. 그러나 ‘기후는 계속 변해 온 것’이라는 반대론자의 논리만큼은 반박하고 싶다.
기후는 계속 변해 온 것이라는 사실 자체는 맞다. 문제는 그 변화의 진폭과 속도가 현재 삶의 안정성을 크게 흔들어 놓는 데 있다. 예를 들어 몇 세대가 안정적으로 터를 잡고 살아온 고향이 하루아침에 홍수에 휩쓸리고, 몇백 년간 포도 농사를 지어 온 지역에서 이제는 포도가 잘 자라지 않게 되는 것이다. 다른 작물을 심거나 포도 주산지를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공장지대였던 곳이 하루아침에 뚝딱 포도 농장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기후변화는 물과 식량의 문제가 되고, 물과 식량의 문제는 전쟁의 이유가 된다. 기후변화 반대론자조차 전쟁은 원하지 않을 것이다. 예측 가능하고 안정적인 지속과 번영이 인류의 최우선 과제가 아닌가.
또 다른 비극은 기후변화의 칼날이 잘사는 나라, 잘사는 사람보다 빈곤국과 사회적 약자에게 먼저 닥친다는 점이다. 성장의 과실을 따 먹느라 가파른 기후변화의 원인을 제공한 이들이 그 부작용도 온전히 떠안았다면 진작에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도 해 본다.
최근엔 AI 기술이 기후변화를 앞당기는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그러나 AI 기술 개발이 국가 간 패권 경쟁으로 흐르면서 기후변화 문제는 더욱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인류가 똑똑한 지성체를 만들겠다고 열을 올리면서도 정작 생존을 위한 문제에 대해선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을 생각을 하지 않으니 참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신진호 온라인뉴스부 차장
2026-09-04 25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THE NEXT : AI 운명 알고리즘 지금, 당신의 운명을 확인하세요 [운세 확인하기]](https://imgmo.seoul.co.kr/img/n24/banner/ban_ai_fortune_v2.p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