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인간의 자연 상태인가 극복의 대상인가

  • 기사 소리로 듣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공유하기
  • 댓글
    0
수정 2026-03-30 00:10
입력 2026-03-29 23:45
인간은 늘 전쟁을 해 왔다. 그것을 ‘자연 상태’로 보아야 할까 아니면 제도적으로 극복하고 폐지할 수 있는 대상으로 봐야 할까? 전쟁과 평화에 대한 철학자들의 논의는 바로 그 논점을 둘러싼 지적 대결의 산물이다.

모든 정치적 논의의 시작에는 ‘군주론’과 ‘로마사 논고’의 저자인 마키아벨리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키아벨리는 전쟁을 도덕적으로 비난하거나 제거해야 할 악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정치 공동체의 생존과 자유를 위해 전쟁 준비가 필수적이라고 보며, 전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시민적 덕성이 함양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한 시각은 ‘리바이어던’의 저자 토머스 홉스로 이어진다. 홉스는 자연 상태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규정한다. 외적의 침입에 맞서기 위해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권리를 포기하고 신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만들어진 리바이어던, 국가를 초월한 상위의 법은 없다. 세계는 영원히 전쟁의 늪에서 허우적댈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이다.

모든 철학자가 비관적인 것은 아니다. ‘전쟁과 평화의 법’을 쓴 네덜란드의 법학자·철학자인 휘호 흐로티위스가 대표적이다. 그는 ‘정당한 전쟁’이라는 개념을 통해 전쟁의 발발 조건과 수행 방식에 규범적 제한을 도입했다. 전쟁, 더 나아가 싸움이라는 인간적이고 자연적인 현상 자체를 없앨 수는 없으니, 일단 전쟁을 법적 질서 내에 포섭하고자 한 것이다. 칸트의 영구평화론 역시 조약을 통해 전쟁을 종식하려 했다는 점에서 이러한 지적 흐름의 산물이다.

20세기에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은 인류는 칸트적 평화 구상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우드로 윌슨이 제창한 국제연맹,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설립된 국제연합은 칸트의 ‘국가 연합’ 아이디어를 부분적으로 제도화한 것이다. 물론 인류는 아직 완전한 평화에 도달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꿈을 향한 여정은 계속되고 있다.

노정태 작가·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
2026-03-30 25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
원본 이미지입니다.
손가락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확대해 보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