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 책은 어때야 한다는 고정관념/최나욱 건축가·작가
수정 2022-08-29 15:48
입력 2022-08-17 20:34
건축에서 도서관은 ‘책’에 대한 관념을 구현하는 일이다. 2004년 미국 시애틀에 지어진 ‘시애틀 공공 도서관’은 공간적으로 ‘책을 보는 방법’뿐 아니라 개념적으로 ‘책을 인식하는 방법’을 다룬 건물으로, 건축가 렘 콜하스는 건축에 앞서 도서관 이용 방식을 정리한 다이어그램을 선보인다. 건물의 발주처인 공무원을 포함해 웬만한 이들이 ‘도서관은 책을 위한 곳’이라는 통념을 가지고 있던 중에, 막상 도서관의 실제 이용 면적을 정리해보니 책과 관련된 공간은 고작 32%고 무관한 공간이 68%에 해당하더라는 사실을 밝히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콜하스는 무려 20년 전 도서관 건축을 맡으면서 ‘책과 무관한 공간’을 조명하는 설계를 진행한다. 예나 지금이나 책과 도서관에 대한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는 끔찍한 소리처럼 들리지만, 콜하스는 그에 대해 ‘온갖 미디어가 역사적으로 변화해온 다이어그램’까지 제시하며 가장 진보적이고 유연해야 하는 식자층이 역설적으로 가지고 있던 보수성을 지적한다. 사회가 더욱 변화무쌍해져 가는 지금, 그것을 관찰하고 분석해야 마땅한 어느 지층에서 되려 그에 대한 감각이 유난히 무뎌 있는 모습을 보며 20년 전 건축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2022-08-18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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