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슬픈 다뉴브강의 아리랑/박록삼 논설위원
박록삼 기자
수정 2019-06-06 01:41
입력 2019-06-05 22:32
1956년 10월 23일 20만명이 넘는 헝가리 노동자, 대학생들은 스탈린 동상을 끌어내리는 등 소련군 철수, 정치활동 자유, 민주주의 등을 요구하며 소련군을 국경 바깥으로 몰아내는 ‘헝가리 민주혁명’에 성공했다. 혁명정부는 바르샤바조약기구 탈퇴, 중립국 선언, 복수정당 허용 등 개혁 정책을 표방한다. 하지만 혁명 일주일 만에 소련군에 의해 진압됐다. 이 과정에서 1만 2000명 안팎의 시민들이 소련군 총탄에 희생됐다. 시인 김춘수(1922~2004)는 처참한 학살에 대해 ‘…/ 죽어서 한결 가비여운 네 영혼은/ 다뉴브강 푸른 물결 위에 와서/ 오히려 죽지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소리 높이 울었다/ 다뉴브강은 맑고 잔잔한 흐름일까/ 요한 쉬트라우스의 그대로의 선율일까’(‘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중)라며 서늘한 추모를 바치기도 했다.
또한 이에 앞서 헝가리는 2차 세계대전의 포화 속 참상을 몸으로 겪은 전쟁터이자 나치와 함께했던 참전국이었다. 패전 직전 헝가리 민병대는 유대인 수천 명을 다뉴브 강가로 끌고 가 신발을 벗게 한 뒤 총을 쏴 강물 속으로 떠밀었다. 그 흔적은 강가에 나뒹구는 60켤레의 빈 신발로 형상화돼 참담한 기억을 현재적 의미로 남겨 두었다.
모든 역사를 다 기억하며 말없이 흐르는 다뉴브강에 유람선 전복으로 헝가리인 2명과 한국인 사망자·실종자 26명이 보태졌다. 지난 3일 저녁(현지시간) 수백 명의 부다페스트 시민들이 참사가 난 다뉴브강 머리기트 다리 위를 메웠다. 그리고 30분 남짓 동안 서툰 발음으로 이어진 그들의 ‘아리랑’ 가락이 다뉴브강의 출렁거림 사이를 애잔히 넘나들었다. 인간에 대한 예의이자 죽음에 대한 애도였다. 그 장면을 영상으로 본 한국인들은 위로를 받았다. 그들은 가사의 뜻도 모르건만 슬픔의 북받침과 간절함을 아리랑 가락에 담았다. 그 기운이 다뉴브강 바닥에 닿은 걸까. 다음날 희생자 3명이 가족 곁으로 찾아왔다. 슬픔의 다뉴브강엔 슬픔을 이겨낼 인류애가 흘렀다.
youngtan@seoul.co.kr
2019-06-06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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