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 박 시장이 구룡마을 개발 제1원칙 포기한 이유는?/최광숙 논설위원
수정 2013-09-18 00:00
입력 2013-09-18 00:00
무허가 판자촌인 구룡마을의 개발 논란이 일 때 서울시가 제시한 부동의 제1원칙은 ‘100% 공영개발’이었다. ‘강남의 허파’인 대모산과 구룡산 자락에 위치한 구룡마을은 자연녹지와 공원 지역으로 묶여 있어 개발 자체가 안 되는 곳이지만, 판자촌 정비라는 불가피한 이유로 개발이 필요하다면 그 개발 이익은 공공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더구나 강남의 마지막 노른자 땅이라 민간개발이 허용되면 부동산 투기 광풍이 불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됐다.
하지만 박 시장은 무슨 연유인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2011년 4월 확정한 완전 공영개발 방식을 포기했다. 박 시장도 취임 직후에는 개발이익 사유화에 대한 특혜 방지 및 외부 투기세력 차단 등을 위해 공영개발 방식을 지지했지만, 지난해 6월 돌연 민간개발 방식인 환지방식을 추가하기로 입장을 바꾸었다. 박 시장 입장에서는 ‘오세훈표’ 개발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을지 몰라도 민간개발 방식의 도입은 문제가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구룡마을 토지 소유자는 100여명에 이르는데, 이 중 한 사람이 전체 면적의 45% 정도를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민간개발 방식이 도입되면 그에게 엄청난 개발 이익이 돌아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강남구 관계자는 “이 대지주는 토지 수용 방식이면 양도세 900여억원을 내야 하지만 환지방식은 양도세를 한 푼도 내지 않는다”고 했다. 개발이익에 세금까지 안 낸다면 “서민을 위한다는 박 시장이 돈 있는 자를 더 배불리는 정책을 편다”는 지적도 무리는 아니지 싶다. 한 서울시 관계자도 “한 사람에게 과도하게 개발 이익이 가면 특혜 시비가 일 수 있다”고 했다.
환지방식이 도시계획의 근간을 흔드는 것도 문제다. 녹지와 공원 지역인 구룡마을을 개발 가능한 대지로 환지해 준다면 나쁜 선례가 돼 다른 녹지 및 공원 지역 등을 훼손하는 길을 터줄 수 있다. 환지방식은 서울시의 작은 규모 사업에 도입된 적은 있어도 대형 개발 사업에 도입되는 것은 이번이 사실상 처음이다. 그런 점에서 강남의 세곡보금자리 등 완전 공영개발 방식을 택한 다른 지역과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될 수 있다.
서울시는 “전면 공영개발 방식은 시행자인 SH공사의 채무가 심각한 상황에서 대상 토지 전부를 매입하기 어려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강남구는 “개발 지역에 짓는 아파트의 35% 정도만 분양해도 8000여억원이 들어오기 때문에 토지수용비를 충당하는 것은 물론 수천억원의 잉여 개발이익이 발생한다”고 반박한다.
평생 시민운동가로 공공 이익을 위해 일했다고 자부하는 박 시장이 집 없는 서민이 아닌 토지 소유주들의 손을 들어 주는 것 같아 좀 의아스럽다. 자신이 추구해 온 가치와 정반대인 정책 결정이 혹여 내년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SH공사의 부채 규모를 줄이려는 등의 꼼수는 아닌지 의혹의 눈길이 쏠릴 수밖에 없다.
bori@seoul.co.kr
2013-09-18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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