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옷을 벗어던졌을 때 맨몸은 확신의 상징이 됐다
수정 2012-03-03 00:00
입력 2012-03-03 00:00
【나체의 역사】 필립 카곰 지음 학고재 펴냄
한 개그맨의 표현을 빌리자면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다. 영국의 심리학자 필립 카곰이 지은 ‘나체의 역사’(정주연 옮김, 학고재 펴냄)는 이 물음에 답하려는 책이다. 나체의 역사와 의미에 대해 나체주의자인 저자가 탐구한 내용을 담고 있다. 말초적인 귀띔을 준다면 99컷의 컬러 사진 포함, 모두 143컷의 나체 사진이 실렸다.
책은 알몸의 역사에 대해 종교와 정치, 대중문화 등 세 가지 범주로 나눠 접근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나체를 인간해방의 한 방편으로 격상시킨다. 예컨대 2000년 11월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에서 팬티만 걸친 여성이 ‘관음증 버스’를 타고 집안일을 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이 버스는 미국 수정헌법 1조, 언론의 자유를 홍보하기 위해 미국 전역을 순회 중이었다. 주최 측은 버스 시위를 통해 누군가가 옷을 입을지 벗을지를 결정할 권리는 그 자신에게 있지 정부나 대중에게 있지 않다는 사실을 역설했다. 옷 벗을 권리는 곧 나 자신이 될 자유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처럼 옷을 벗어 던지는 행위를 “우리가 알몸으로 세상에 왔으므로 옷으로 상징되는 보호막과 일상의 겉치레를 벗고 본성으로 돌아가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나체는 수세기 동안 억압되고 수치스럽게 여겨졌지만 이제 도덕적 우위를 확보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아프가니스탄이 공격받고 있을 때 전투 재킷을 입고 포즈를 취한 조지 부시나 토니 블레어 등은 존경하지 않지만, 나체 시위자들과 모피 추방 자선기금 모금자들의 모습에서는 존경심을 느낀다. 나체는 종종 예술 무대에서도 해방과 성적 자부심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책은 이처럼 수치심과 나약함을 상징했던 나체가 일종의 확신과 힘의 상징으로 바뀌는 순간을 소개하고 있다. 2만 5000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2012-03-0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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