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정치인의 주술, 유권자의 미신/임성호 경희대 비교정치 교수
수정 2010-05-31 00:36
입력 2010-05-31 00:00
권력을 위해 무조건 상대방에 대한 반대를 위한 반대, 내 편에 대한 찬성을 위한 찬성을 하는 정치인이 한국에만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미국에서도 민주당과 공화당 정치인들 간 관계는 그러한 일방적, 편파적, 과장적 성격을 띤다. 집단주의적 양극화로 인한 대립은 근래 미국정치의 고질병이다. 정치인들의 주술사적 행태가 꼭 오늘의 문제만도 아닐 것이다. 과거엔 더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러한 동서고금의 문제가 왜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특히 심각한 대립과 교착이라는 병폐를 낳고 있을까?
우선 시민사회와 소위 지식인이 정치인의 주술 효과를 완화시키기는 커녕 오히려 더 증폭시키고 있다는 데서 하나의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정치인은 권력 유지나 획득을 위해 중용적 교양과 양식을 버리고 양극단의 주술에 매달린다 해도, 시민사회와 지식인 그룹이 흔들리지 않고 중간에서 완충 역할을 하고 균형 잡힌 버팀목이 되어준다면 사회 전체가 그리 심한 갈등과 혼란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시민단체 활동가, 교육자, 언론인 중엔 중용, 균형, 합리성, 성찰을 덕목으로 보지 않는 사람이 많다. 이들은 도리어 한쪽 편의 주장만 맹신·고수·실행하는 것을 ‘행동하는 지성’으로 오해해 일방적 주술 정치에 한몫 끼곤 한다. 상당수 종교인도 온유와 자비가 아닌 독단과 증오를 퍼뜨리는 데 몰두하고 있다. 각계각층의 시민사회 지도자들이 이처럼 이념의 틀에 사로잡혀 건전한 균형적 중간지대를 형성하지 못한다면, 정치인들의 극단적 주술행위에 제동이 걸릴 수 있겠는가.
근원적 책임은 국민 스스로에 있다. 미신으로 불안과 두려움에 떠는 사람이 많을수록 주술사가 번성한다. 수요가 있기에 공급이 있다. 상식과 너무도 동떨어진 괴담, 음모론에도 솔깃해 하는 국민이 많다면 양극단의 정치인은 신이 나서 일방적 과장을 떨고 남에 대한 왜곡과 증오심을 국민에게 더욱 퍼뜨리려 들게 된다. 미신적 심리에 빠진 유권자 스스로 정치인을 주술사, 사이비 교주로 만들고 일부 시민활동가, 교육자, 언론인, 종교인을 종범(從犯)으로 전락시킨다. 사회구조가 복잡해지고 변화가 빨라질수록 국민은 적응에 어려움을 겪으며 막연한 불안감과 불신감에 시달리기 쉽다. 그럴수록 비상식적 미신에 매달려 심리적 위안을 찾으려 든다. 오늘날 정치의 주술화를 가속시키고 있는 우리 유권자의 모습이 이렇다면, 정치권을 탓하기 전에 우리 스스로도 중용적 교양, 이성적 양식, 반성적 성찰을 향해 변하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 권력만 생각하거나 이념을 파는 사람들이야 주술로 먹고 살지만 국민은 미신으로 헛된 몽상 외에 무슨 득을 얻겠는가.
2010-05-31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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