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村)스러운 이야기①|메주는 예쁘지요, 그 맛의 비법은?
수정 2010-01-17 15:06
입력 2010-01-16 00:00
저는 1년에 콩 열 가마니 분량의 메주를 만듭니다. 저와 제 아들 기범이가 살아가는데 그만큼은 해 팔아야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콩 열 가마니를 매달 나눠서 할 수 있다면 일이 쉽겠지만 메주를 쑤고 띄우는 시기가 정해져 있어 그 시기를 놓치면 안 됩니다.
메주를 쑤는 첫날, 제일 먼저 콩을 깨끗이 씻어 불려 놓습니다. 콩을 삶을 무쇠솥도 깨끗이 씻어 마당에 내다 겁니다. 그 솥에 불린 콩을 넣고 물을 잡아야 하는데 불리지 않은 콩에는 배 이상의 물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다음날 새벽에 불 때기 좋게 장작을 준비해 두면 첫날일은 끝입니다.
그 다음날은 새벽 5시에 일어나 가마에 불을 붙이고 물을 다시 가늠해서 잡습니다. 장작불을 세게 해서 불을 넣다보면 약 한 시간 정도 지난 후 작은 솥부터 끓기 시작합니다. 처음 끓기 시작하면 넘치지 않게 불 조절을 잘해야 하고 불을 점점 약하게 하다가 보글보글 끓는 정도에서 약 다섯 시간 정도를 더 익히면 콩이 노란색에서 주황색으로 변합니다. 이때 불이 세면 타버리고 불이 너무 약하면 콩이 익지 않습니다. 저는 장작으로 불을 때니까 불이 일정하지 않아서 신경이 많이 쓰입니다.
하얀 김과 함께 콩을 퍼내면 곧바로 분쇄기로 들어가서 콩이 갈리고, 갈린 콩은 다음 사람 손에 넘어가서 메주 틀에 들어가고, 그것을 갈무리해서 한 사람이 메주틀에 올라가서 밟습니다. 그러면 비로소 메주모양이 완성됩니다.
이때 너무 콩이 식으면 서로 뭉쳐지지 않고, 너무 뜨거우면 일하기 쉽지 않아서 적당히 식혀야 합니다. 그렇게 하루에 한 솥당 두 번씩 콩을 삶고 메주를 쑤다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가 버립니다.
누가 메주를 못생겼다고 하는지…, 정성들여 만든 메주를 마루에 쌓아 놓고 보면 정말 예쁘다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에 일이 익숙지 않아서 메주모양이 조금 덜 생기게도 나왔지만 그것들도 겉이 마르기 시작하면 예쁘게 모양을 잡게 됩니다.
첫날 만든 것은 텅 비었던 사랑 대청마루에, 둘째 날은 와상에, 셋째 날은 안채 마루까지…, 그러다 보면 집 구석구석이 모두 메주의 차지가 되고 비로소 메주 쑤는 일은 끝납니다.
온 집을 차지한 메주는 온몸으로 햇볕을 받으며 서서히 말라갑니다. 저희 집은 정남향집이라 한겨울에도 햇볕은 정말 따스하고 좋습니다. 그렇게 햇볕과 지리산 바람을 먹으며 중간 중간 뒤집어주면서 한 달여 있다가 메주방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메주방은 메주를 띄우기 위해 제가 별도로 만든 방으로 따뜻하게 불을 때면 서서히 발효가 되는 곳입니다.
메주를 제대로 발효시키기 위해서는 늘 온도가 일정해야 하기 때문에 밤에도 불을 때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늦은 밤에도 메주방에서 불을 때며 책을 보기도 하고 원고를 쓰기도 하며 한 달여 정도를 보냅니다. 그때 가끔씩 콩을 삶아 청국장을 만들기도 합니다. 그 방의 온도가 기왕에 있으니까 청국장은 메주 띄우는 그때만 만들어서 나눕니다.
겨울 동안 우리 집에서 가장 따뜻한 곳이 그 방이라서 손님이 오면 차도 그 방에서 마시고 밥도 그 방에서 먹기도 합니다. 메주방은 겨울 동안 제 생활의 중심입니다.
이 세상일이 그냥 이루어지는 것은 없어서 메주도 그만큼의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야만 됩니다. 음양오행의 과정을 그 모든 시간 동안 거치면서 다 띄어진 메주모양은 처음 만들었을 때와는 약간 다른 모양입니다. 메주 안이 떠서 안에 공간이 조금 생기고 그래서 겉이 마른 메주의 가운데가 조금 들어간 모양에 무게는 반 이상으로 줄어듭니다. 그때 메주 표면의 맛은 고소한 과자 맛입니다.
콩 하나의 맛이 그렇게 다양할 수가 없습니다. 처음 비린 맛에서 구수한 맛으로, 단맛으로 그다음은 고소한 맛으로 변하니 말입니다. 그 이후의 콩맛은 어떻게 나올까요? 된장 맛? 청국장 맛? 간장 맛? 용도에 따라 다르게 나오겠지요.
그렇게 다 띄운 메주는 다시 밖으로 나와서 햇볕을 받으며 깨끗이 닦습니다. 그러곤 정월 보름이 지난 첫 말 날, 간수 빠진 소금물이 담긴 장독에 메주를 넣고선 한동안의 세월을 햇볕과 바람을 맞으며 기다려야 하겠지요.
장독 안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저는 단지 소금물과 메주만 넣었을 뿐입니다. 나머지는 지리산 자연이 다 해줍니다. 지리산의 물이, 햇볕이, 바람이 된장의 맛을 만들어 줍니다. 그렇듯이 우리는 자연의 도움 없이는 그 어떤 것도 만들 수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남난희 씨: 76일 간의 백두대간 단독 종주, 여성으로서는 세계 최초로 해발 7455미터의 히말라야 강가푸르나 봉에 오르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여성 산악인으로 이름을 알렸다. 현재는 아들과 함께 지리산 화개골에서 자연을 담은 차와 발효식품을 만들며 살고 있다.
《삶과꿈》에서는 <촌(村)스러운 이야기>를 통해 자연과 함께하는 그녀의 소박하고 여유로운 삶의 지혜를 1년간 엿본다.
글·사진_ 남난희 《낮은 산이 낫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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