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책을 말한다] 부귀·도덕 함께 추구한 ‘日경제의 아버지’
수정 2009-11-14 12:00
입력 2009-11-14 12:00
【 논어와 주판 】
서양 여행은 충격이었다. 여태껏 사농공상의 신분차별이 준엄하고 ‘상업은 유교에 반(反)하고 상공업은 비천한 자들의 몫’이라던 낡은 관념이 우세하던 일본과 달리, 연회 장소에서 관리와 기업인이 평등하게 대화를 나누고 관존민비의 풍조도 없었다. 오히려 상공업자가 높은 사회적 지위를 누리면서 국가 발전에 기여했다. 이때 그는 ‘상공인의 실력을 길러 상공업을 발전시키지 않으면 일본의 부국강병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1868년에 귀국을 한 후 대장성의 관료로서 도량형·조세·은행·회계 제도를 근대적으로 개혁하는 데 큰 업적을 남겼다. 1873년 33세 때 드디어 비즈니스맨이 되었다. 서양의 상인들처럼, 그 자신도 일본굴기의 최전선에 서고 싶었다. 제일국립은행, 도쿄가스, 제국호텔, 기린맥주 등등 500개 기업의 설립에 관여하며 일본 근대화 과정에서 ‘최초의’ 사업을 수없이 벌여나갔다. 개인의 부가 다수의 부라는 합본주의 전통을 세웠기에 ‘일본경제의 아버지’라고 불렸다. 더구나 거대한 부를 교육·의료·빈민구제 등의 공익·사회복지 사업으로 환원하며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산증인이 되었다. 그래서 ‘일본 현대문명의 창시자’라 불리는 그가 1927년에 펴낸 ‘논어와 주판’(페이퍼로드 펴냄)은 부귀와 상인에 대한 인식의 틀을 송두리째 뒤바꾸었다. “정당한 부는 부끄럽지 않고, 상인은 공익의 전도사이자 국부의 원천”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 것이다.
송나라 주자학파의 영향을 받은 에도 시대 유학자들은 “부자는 인의도덕이 없기 때문에 어진 사람이 되고 싶거들랑 반드시 부귀의 염을 버려라.”고 했다. 하지만 시부사와는 “부귀와 도덕은 절대로 모순관계가 아니라 함께 추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논어(도덕)와 주판(경제)’의 통일 즉 ‘의리합일(義利合一)=도덕경제합일’이야말로 ‘원래의 공자’이고, ‘진짜 논어’라는 것이다. 2006년 화제를 몰고 온 중국의 ‘대국굴기’는 이 책이야말로 “일본을 굴기시킨 비결이고 중국 굴기의 출구”라고 평가했다. 후진타오가 기치로 내건 ‘조화로운 사회’와 ‘인본주의’도 문화적 자양분을 ‘논어’라고 하는 소프트파워에서 흡수하고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경세치용·이용후생·실사구시 정신으로 조선의 부국강병을 실현한 인물이 조선에는 왜 없었나 하는 아쉬움을 금할 수가 없다. 그러면 일제강점기도 없었을 터인데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문다.
노만수 시인 겸 번역가
2009-11-1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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