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共~유신시대 풍운아 이후락씨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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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9-11-02 12:50
입력 2009-11-02 12:00
박정희 시대의 실세 중 실세였던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이 지난달 31일 서울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에서 뇌종양과 노환이 겹쳐 별세했다. 85세. 그는 지난 5월 이 병원에 입원했다.

이 전 부장은 1924년 울산에서 태어나 울산공립농고를 졸업했다. 1946년 군사영어학교를 1기로 졸업해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육군 정보국 차장과 주미대사관 무관을 거쳤다. 미 중앙정보국(CIA) 연락책도 맡았다.

이 전 부장이 고(故) 박정희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61년의 5·16 군사쿠데타였다. 5·16 주체세력은 미국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당시 CIA와 가까웠던 이 전 부장을 영입했다.

이 전 부장은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공보실장으로 발탁됐다. 그는 미국의 지원을 끌어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 박 전 대통령의 신임을 받았다. 1963년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이 대통령에 당선된 뒤 이 전 부장은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기용됐다. 이 전 부장은 박정희 대통령 시대 출범과 함께 권력핵심으로 떠오른 것이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으며 한때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누렸다. 박 전 대통령은 1969년 3선(選) 개헌의 후폭풍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이 전 부장을 주일대사로 보냈으나 1년 뒤 핵심자리인 중앙정보부장으로 발탁했다. 이 전 부장은 1971년의 대통령선거를 사실상 총지휘했다.

고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1971년의 대선에서 패배한 뒤 이씨에게 “나는 박정희 후보에게 진 것이 아니라 이 부장에게 졌소.”라는 말을 남겼다. 당시 관권 및 금권 선거를 총지휘한 그를 비꼰 것이다.

이 전 부장은 ‘대한민국 제1세대 대북 밀사’로도 유명하다. 1972년 5월2일 자살용 청산가리 캡슐을 몸에 감추고 3명의 수행원과 함께 채 판문점을 넘었다. 그는 3박4일간의 방북기간 중 김일성 주석(당시 직함은 노동당 총비서)을 두 차례 만나 북측으로부터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이라는 ‘7·4 공동성명의 기본 원칙’을 받아 왔다.

북측의 김영주(김일성 주석 동생) 노동당 조직지도부장을 대신해 박성철 제2부총리가 그해 5월29일부터 서울을 답방, 박 전 대통령 및 이 전 부장과 수차례 회담을 가졌다. 그 결과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됐다.

그는 공작정치의 대명사라는 말도 듣는다. DJ 납치 사건의 주범으로도 꼽힌다. 1973년 7월 일본 도쿄에서 발생한 DJ 납치사건의 주동자로 지목되면서 박 전 대통령의 신임을 잃었다. 특히 1973년 12월1일 당시 윤필용 수도경비사령관이 사석에서 “박정희의 후계자는 이후락”이라고 발언한 게 파문을 일으켜 중앙정보부장 자리에서 경질됐다.

권좌를 떠난 뒤 신변에 위협을 느낀 이 전 부장은 “조계종 회의에 참석한다.”는 이유로 그해 12월 말 극비의 정보 문서들을 챙겨 영국령 바하마로 출국했다. 사실상 망명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망명한 이 전 부장이 자신의 치부를 폭로할 것을 우려해 귀국을 종용했다는 설이 정설로 돼 있다.

그는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모든 것을 용서한다.”는 친필 편지를 받고 1974년 2월 귀국했다. 1970년 말 국회의원을 잠시 지내기도 했다. 하지만 1980년 서울의 봄 이후 신군부 세력으로부터 부정축재자로 몰리면서 공직에서 사퇴하고 정치활동을 규제받았다.

1985년 정치활동 규제에서는 풀렸으나 외부행사에 나오지 않으며 사실상 은둔생활을 해 왔다. 이 전 부장은 입원하기 전까지 경기 하남시에 있는 별장에서 칩거하며 조용히 말년을 보냈다.

유족은 이동훈 전 제일화재 회장 등 3남1녀. 빈소는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 발인은 2일 오전 8시30분. (02)440-8922.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2009-11-02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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