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바보음악가들의 행진/김병종 서울대 교수·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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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9-10-29 12:00
입력 2009-10-2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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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종 서울대 교수·화가
김병종 서울대 교수·화가
지난 22일 밤 서울 양재동의 엘타워 그랜드홀에서는 의미 있는 행사 하나가 열렸다. ‘봉사와 나눔 문화 확산을 위한 1004 음악회’.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이 모임의 취지에 찬동하여 음악회에 몰려왔고 기꺼이 꽤 비싼 티켓을 샀다. 회장의 인사말과 기증식에 이어 이날의 하이라이트인 우주호와 음악친구들이 등장했다. 일명 극장을 떠난 바보음악가들이었다.

십여 명의 젊은 남성들이 뽑아내는 우렁찬 목소리는 삽시간에 좌중을 압도했다. ‘친구’ ‘향수’ ‘우리들은 미남이다’ ‘최진사댁 셋째딸’ 등 그들의 레퍼토리가 이어질 때마다 환호와 박수가 뒤따랐다. 기침소리 하나도 조심스러운 여느 음악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출연자와 청중이 혼연일체가 되는 느낌이었다. 바로 이런 분위기와 느낌의 공연이야말로 바보음악가들이 목표로 하는 공연일 것이다. 그런데 하나같이 잘생기고 노래 잘하며 화려한 이력을 지닌 그들을 바보라고 부르는 이유는 뭘까. 사연이 없지 않았다.

그날의 사회를 맡은 성악가는 이들이 바보음악가로 불린 사연을 이렇게 소개했다. 모든 예술가들에게 다소간 그런 기질들이 있지만 성악가들 역시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경향들이 있고 따라서 여럿이 함께 모여 화음을 낸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그런데 오랜 유학에서 돌아와 우리 사회에 성악가로 첫발을 내디딜 즈음에 그들은 한 사람을 만났고 그 한 사람의 설득 때문에 다른 성악가들과는 사뭇 다른 행보를 이어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성악가인 그들이 극장보다는 오히려 극장 밖의 다양한 현장에서 더 자주 공연을 하게 된 것이었다.

사실 극장을 떠난 공연이란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어쩌다 한두 번이라면 몰라도 수백 회를 이어오며 계속 하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극장보다는 그늘지고 소외된 우리 사회의 곳곳에서 그들의 목소리로 나눔을 실천해 왔던 것이다. 양로원과 보육원은 물론 나환자촌과 교도소와 농촌을 돌면서 그들은 수년 동안 바보같이 어려운 공연 행보를 이어온 것이다. 그래서 테너 유현국, 송승민, 구형진, 김준홍, 김흥기, 민경환과 바리톤 우주호, 이진원, 박영욱 그리고 베이스 손철호, 이병기, 최경훈, 정성영 반주 신하나, 신수현, 우수현 등의 이름 앞에는 이제 자연스럽게 바보음악가라는 타이틀이 붙어버리게 되었다.

그날 이들에게 바보철학을 주입시킨 그 한 사람이 소개되었다. 미래상상연구소의 홍사종 대표. 그는 쑥스러워하면서 엉거주춤 일어나 박수를 받았다. 원래 홍 대표는 공연예술계의 귀재로 알려진 사람이다. 정동극장의 신화를 만들어 낸 그는 세종문화회관과 경기도 예술의 전당 등 가는 곳마다 자신의 끼와 역량을 마음껏 발휘했다. 조직을 활성화시키면서 바람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런데 유학에서 돌아온 일군의 쟁쟁한 성악가들과 만났을 때 홍 대표는 새로운 주문을 했다. 바보음악가들이 되십시오. 음악을 만날 수 없는 곳을 찾아다니면서 당신들의 목소리를 선물하십시오. 그것이 음악가로서 극장위주의 삶보다 훨씬 가치 있는 일일 것입니다.

놀랍게도 홍 대표의 이런 음악철학에 젊은 음악가들은 크게 공감했고 수년 동안 수백 회의 공연을 계속해 왔던 것이다. 외롭고 힘든 삶 들에 바보음악가들은 꽃 대신 목소리를 가지고 찾아가 눈물과 환희, 희망과 감동을 나누어 주었다.



어느새 한해를 마무리하게 된다. 이때쯤 사람들은 한번쯤 어렵고 그늘진 삶을 돌아보게 된다. 하지만 우리의 바보음악가들은 일년 열두 달을 마음으로 그들과 함께해 온 것이다. 새삼 이 바보 같은 그러나 장한 음악가들에게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김병종 서울대 교수·화가
2009-10-29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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