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霜降단상/김종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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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9-10-24 12:40
입력 2009-10-24 12:00
“나는 걸을 때만 명상에 잠길 수 있다. 걸음을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 프랑스 사상가 루소는 ‘고백록’에 이렇게 썼다. 걷기와 사유에 관해서라면 빼놓을 수 없는 또 한명의 사상가가 있으니 실존철학의 대가 키르케고르다. 그는 자신의 모든 작품은 걸으면서 구상한 것이라고 일기에 적고 있다. 일제강점기 공주 마곡사에 숨어 지내던 김구 선생도 태화산 길을 포행했다고 하지 않나. 어떻게 하면 떠오르는 영감 속에 명상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사유의 방편으로 걷기를 실천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움직이기 싫어하는 삼보탑승족에겐 그야말로 언감생심이다.

때는 바야흐로 된서리가 내리기 시작한다는 상강(霜降).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할 지금 들녘은 가을걷이가 한창인데, 텅빈 글 곳간을 지키는 이 몸은 외로운 추수꾼. 씨 뿌린 게 없으니 거둘 게 없는 건 정한 이치 아닌가. 노결위상(結爲霜)이라고 했다. 이슬이 맺혀야 서리가 되는 법이다. 이제라도 마음밭에 씨를 뿌리자. 고금동서의 위인들은 하나같이 걷기는 글감의 씨앗이라고 웅변하고 있다.

김종면 논설위원 jmkim@seoul.co.kr
2009-10-24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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