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웃의 익살과 해학 그대로 표현해야”
수정 2009-10-17 12:00
입력 2009-10-17 12:00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서 만난 중국 제3세대 작가 위화
중국 제3세대 작가 위화(49·余華)를 15일 제61회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이 열리고 있는 현지에서 만났다.
위화는 올해 주빈국인 중국 정부가 현대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들을 프랑크푸르트에 초청해 참가하게 됐다.
주빈국관 홀에서 바쁘게 걸어가던 위화를 우연찮게 만나 즉석에서 인터뷰를 청하자, 그는 다음 약속시간까지 약 40분이 남았다며 흔쾌히 응했다. 그는 중국어로 말하고 영어로 통역됐다.
170㎝가 채 안되는 단신의 위화는 물방울 무늬가 새겨진 아주 폭이 좁은 갈색 넥타이에 짙은 감색 양복의 말쑥한 차림새였다. 한국에서 발행된 소설 책표지에 그려진 위화는 1930년대 한국의 작가처럼 후줄근했는데 말이다.
●서민의 고단한 현실 담은 작품 성향
장편소설 ‘허삼관 매혈기’와 ‘형제’, 단편소설집 ‘무더운 여름’, 영화화돼 세계적으로 알려진 장편소설 ‘인생’ 등을 통해 국내에 널리 소개된 위화는 중국 현대를 사는 서민들의 고단한 현실을 익살과 해학을 담아 조명해 왔다. 마치 이런 식이다.
그 전날 중국대표 작가간담회에 참석한 위화는 “1980년대 발치사와 소설가는 같은 수입의 직업군으로, 300위엔 정도 받았다. 그래도 발치사보다는 자기 작품을 출간해서 남에게 보여주는 작가가 되고 싶어서 발치사를 그만 뒀는데, 지금은 발치사 쪽의 벌이가 더 좋더라.”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중국의 격변이 소설의 배경
1960년생으로 중국 저장성 항저우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발치사로 일한 위화는 다른 사람의 쩍 벌린 입을 들여다 보면서 평생 이를 뽑고 싶지 않아 이를 악물고 방안에 처박혀 소설을 썼다고 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우선 엉덩이와 의자 사이에 우정을 쌓고 오랜 기간에 걸쳐 그 우정을 유지해야 했다.’는 것이다. 갓 스무살이 넘은 나이에 말이다.
중국 작가라고 하면 공산주의 체제에 저항하거나 반정부적인 것을 연상하기도 하는데, 위화의 작품에서는 주로 인간들 사이의 관계와 가족들 사이의 끈끈한 애정, 인간 내면의 변화 등이 다뤄진다.
위화는 소소한 인간군상의 삶을 다루는 자신의 스타일에 대해 “나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서 자랐고, 정부와 관계하기보다는 내 이웃의 삶에 대해 관심이 있고, 잘 알고 있어서 소설에서도 본능적으로 잘 알고 있는 내용을 서술해 들어가게 된다.”고 말했다.
물론 그 인간들의 삶의 배경으로 공산당 정부의 수립, 문화혁명, 1980년대 이후 개방과 개혁 등이 등장한다. 그런 정치·사회적 격변은 등장 인물들의 삶을 완전히 뒤바꿔 놓는다. 자신이 살고 있는 체제에 대해서 위화는 “공산주의 사회에서 사는 일은 좋은 점이 있고 나쁜 점이 있다.
이를테면 문화혁명기(1966~76년)에는 중국에서 자유결혼이 시작됐다. 그 전에는 얼굴도 못 보고 결혼했는데 젊은 남녀가 만나 연애도 하고 결혼을 했다.”며 다소 방어적으로 말했다.
그는 자신의 글이 공자식의 유교적 가치와 연결해서 해석되는 경향에 대해 “나는 공자주의나 유교식 윤리가 아니라 중국의 전통과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라며 “문화혁명 이후 중국 문화가 복잡해지고 지금도 개방을 통해 서방문화를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내년 한국 방문할 것
위화의 단편소설 ‘전율’에는 20대에 데뷔해 유명해졌으나 이제는 잊혀진 시인이 나온다. 자신을 사랑한 여성 팬과 10년간 4차례나 사랑을 나누는 상황이 전개된다. 20대 초반에 소설가로 데뷔해 주목을 받은 그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다. 그러나 위화는 아주 유쾌하게 웃으면서 “나는 바람둥이가 아니다.”고 손사래를 친다.
그는 “다만 여자들을 남자들보다 더 사랑하고, 여자들이 있는 세상은 더 안전하고 신선하고 아름답다.”고 답했다. 그는 내년 봄이나 늦어도 겨울 이전에 한국을 방문해 독자들과 만날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글ㆍ사진 symun@seoul.co.kr
2009-10-17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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