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간 증오와 폭력 그 끝은…
수정 2009-06-20 00:00
입력 2009-06-20 00:00
김이설 첫 장편소설 ‘나쁜피’ 펴내
읽기에 참 고통스럽기만 하다. 그렇다고 그저 덮어버리기에는 극악한 고통을 덤덤하게 풀어내는 인물과 상황의 흡인력이 너무 강하다.
소설 속 작중 화자인 ‘나’(화숙)는 물론 정신지체 장애인으로서 집단 성폭력에 일상적으로 노출된 어머니도, 고물상을 하며 주먹질을 일삼는 외삼촌도, 알코올중독에 찌든 외할머니도, 도박중독증 남편으로부터 벗어난 뒤 만난 옛사랑의 폭력에 또다시 시달리는 외사촌 수연이도, 피붙이로부터 버림받은 수연이의 딸도, 극심한 월경증후군으로 딸과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은 친구 진순이도 모두 피학 또는 가학의 주체로서 돌고 도는 증오와 폭력, 짓밟힘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화숙은 중학교 2학년 겨울, 외삼촌이 어머니를 ‘사실상 죽이는’ 장면을 생생히 목격한다. 하지만 못본 척한다. 그리고 외삼촌의 딸 수연이에게 지속적인 폭력을 가한다. 또한 수연이의 어머니, 즉 외숙모와 고물상 직원 ‘이씨’가 바람이 났다며 거짓 고자질을 해 두 가족을 풍비박산 내는 것으로 복수한다. 보복의 고리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수연이가 마음의 안식을 얻고자 다시 찾은 옛사랑 ‘재현이’는 ‘이씨’의 아들이었다. 마음 깊은 곳에 깔린 원한을 일상적인 폭력으로 수연에게 되갚는 것이다. 화숙으로부터 뒤늦게 이 사실을 접한 수연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거의 없다.
김이설의 첫 장편소설 ‘나쁜 피’(민음사 펴냄)의 얼개다. 200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김이설은 등단작 ‘열세 살’에서 보여줬던, 몽환적이면서도 현실의 추악함을 사실적으로 드러내는 솜씨가 더 정교해지고 세련돼졌다. 이번 작품에서도 증오와 분노, 폭력이 어떻게 순환되며 계속 생명을 유지해 가는지 끔찍이도 정확히 보여준다.
배경의 시간과 공간은 명확하지 않지만 급격한 도시화의 물결 속에 떠밀려 가는 주변부 하층민들의 삶을 그려 냈다. 전형적인 계급간 갈등이 아니라 계급 내부, 가족 내부에서 벌어지는 갈등의 양상을 적나라한 절규와 비명으로 풀어낸다.
문학평론가 백지은은 “김이설이 음울한 고통의 세계로부터 기운차게 창조되는 인간의 위대한 환함에 대해 고개 끄덕일 아름다운 긍정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2009-06-20 20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