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前대통령 국민장 이후] ‘살아있는 권력’ 수사 중대기로… 檢 또 궁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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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9-06-03 00:50
입력 2009-06-03 00:00

천신일 영장 기각 안팎

‘살아 있는 권력’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에 대해 청구한 사전구속영장이 범죄 혐의에 대한 입증 부족을 이유로 기각됨에 따라 검찰의 ‘박연차 게이트’ 수사가 또다시 중대 위기를 맞았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천 회장을 양대 축으로 균형 맞춘 수사를 진행하겠다는 계획이 뿌리째 흔들리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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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밤 사전구속영장이 기각된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이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사를 나와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채 귀가하고 있다.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2일 밤 사전구속영장이 기각된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이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사를 나와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채 귀가하고 있다.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2일 천 회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영장전담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혐의 사실별로 조목조목 기각 사유를 설명했다. 검찰의 반발을 의식한 듯 분량으로는 A4용지 2장에 이를 정도로 세세하게 사유를 밝혔다.

검찰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이 세무조사 무마 청탁과 함께 2008년 8월 중국 베이징에서 중국 돈 15만위안(약 2500만원)을 천 회장에게 건넸다고 밝혔다. 하지만 법원은 레슬링협회 부회장이었던 박 전 회장과 회장이었던 천 회장이 막역한 사이로 이전에도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등이 있을 때 격려금을 줬던 점 등을 들어 범죄의 소명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박 전 회장이 천 회장에게 구명로비를 부탁하는 대신 정산개발이 ㈜세중게임박스에 투자했던 돈 가운데 돌려받을 정산금 6억 2300만원을 면제해줘 천 회장이 그만큼 이득을 취했다고 봤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미 태광실업이 유상증자를 통해 ㈜세중게임박스의 주주가 된 상황인데, 주식 가치가 떨어졌다는 이유로 대표이사가 주주에게 투자 정산금을 돌려줘야 할 의무가 있는지 자체가 의문이라고 설명했다.

증여세 포탈 혐의에 대해 법원은 “천 회장의 행위가 조세의 부과와 징수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한 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해 법리상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고의성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는 것이다. 또 차명주식 거래에 대한 양도소득세 포탈 혐의는 상당 부분 인정했지만, 이 역시 범죄에 대한 소명이 충분치는 않은 데다 이미 천 회장이 미납 양도세를 완납해 정상을 참작했다고 전했다.

유일하게 인정된 혐의가 주가조작 부분이지만, 재판부는 범행의 정도나 동기 등에 참작할 사유가 있다고 보고 구속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다. 또 증거 인멸이나 도주 우려가 없고, 고령인 데다 반성하고 있는 점 등도 참작 사유에 포함됐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혐의 입증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무리한 수사를 강행했다는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검찰은 천 회장의 영장이 기각되면서 이 역시 부실수사라는 비난을 피하기 힘들어졌다.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인 천 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검찰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사용한 비장의 카드였다. 하지만 ‘찬스’를 놓치면서 검찰은 다시 한번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특히 법원의 기각 사유는 곧 범죄에 대한 소명 자체가 부족하다는 뜻이기 때문에 향후 검찰이 천 회장을 불구속 기소하더라도 유죄 판단을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황량한 들판에 홀로 서게 된 검찰이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거듭되는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지 주목된다.

오이석 유지혜기자 hot@seoul.co.kr
2009-06-03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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