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뒤뜰 시민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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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9-01-23 00:54
입력 2009-01-23 00:00
경복궁은 조선 태조가 1395년 창건한 뒤 임진왜란 때 불 탄 것을 고종(재위 1864~1907년)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이 주도해 1868년 다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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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관람객을 맞기에 앞서 언론에 현장이 공개된 22일 기자들이 태원전 권역의 어정(御井·임금이 마시던 우물)을 살펴보고 있다.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일반 관람객을 맞기에 앞서 언론에 현장이 공개된 22일 기자들이 태원전 권역의 어정(御井·임금이 마시던 우물)을 살펴보고 있다.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고종은 그러나 경복궁의 위용처럼 왕권의 지엄함을 나라 안팎에 보여주고팠던 아버지의 염원과는 달리 러시아와 청나라, 일본 등 주변 제국의 틈바구니에서 이권 침탈, 국권 침탈에 시달리며 나라의 생존을 놓고 해답 없는 고뇌를 거듭했다.

문화재청은 22일 고종과 명성황후의 애환이 상징하는 우리 역사의 참담함이 곳곳에 서려 있는 건청궁과 태원전, 함화당·집경당 등 그동안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됐던 경복궁 뒤뜰의 주요 전각을 설 연휴 첫날인 24일부터 공개한다고 밝혔다.

이 전각들의 공통점은 모두 태조의 초창 시기에는 없었으나 고종 시대에 새로 지어졌고, 1905년에서 1920년 사이에 일제가 철거하거나 훼손한 것을 최근 차례로 복원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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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미리 공개한 22일, 가장 눈길을 끌었던 곳은 왕비의 침전인 건청궁 옥호루였다.

1895년 10월8일 일본의 낭인들에 의한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어난 장소로 민족의 아픔과 비극적인 역사를 담고 있다. 일제는 1909년 건청궁을 철거하고 조선총독부 미술관을 건립했다.

복원을 마친 2007년 10월 이후 하루 세 차례, 부분적으로 관람할 수 있었으나 이번에 전면 개방된다.

경복궁 서북쪽 깊은 곳에 자리잡은 태원전은 고종 5년(1868) 건립됐다.

태조 이성계의 어진(御眞·임금의 초상화)을 보관하고 신정왕후(조대비)와 명성황후의 빈전으로 쓰이기도 했으며, 각국 공사를 접견하는 장소로도 이용됐다. 1910~1920년 무렵 훼손되어 철거됐다가 2005년 말 복원했다.

함화당과 집경당은 고종 27년(1890)에 고종이 정사와 경연, 외국공사 접견 등에 사용하고자 지었다. 일제강점기에 주변 행각이 철거되고 조선총독부 박물관 사무실로 이용됐다.

지난해 12월 기존 건물을 보수하고 주변 행각을 복원했다.

한편 이번 공개로 일반인의 관람이 허용되는 경복궁 공간은 8만㎡ 남짓 늘어나게 됐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2009-01-23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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