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 중심으로 본 유대인 학살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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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9-01-16 01:26
입력 2009-01-16 00:00

【홀로코스트, 유럽 유대인의 파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무차별 공습을 자행하는 이스라엘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이 거세다. 나치 독일이 저지른 1930~1940년대 대학살의 피해자였던 유대인이 수많은 민간인을 살상하는 가해자로 지탄받는 현실은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한다.

홀로코스트 연구의 대가인 라울 힐베르크의 역작 ‘홀로코스트, 유럽 유대인의 파괴’(전 2권,김학이 옮김,개마고원 펴냄)가 초판 발간 50년이 다 된 시점에 국내에 번역출간된 건 그래서 한층 의미심장하다. 오스트리아 빈 출신의 유대인인 힐베르크는 500만명에 이르는 유대인을 학살하는 것이 도대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는지를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 중심으로 분석했다. 이를 실증하기 위해 나치 대학살의 시작과 끝을 120여개의 도표와 각종 자료를 포함,1700여쪽에 이르는 방대한 양으로 집대성했다.

힐베르크는 나치 대학살의 구조에 ‘파괴기계’와 ‘파괴과정’의 개념이 내재돼 있다고 주장한다. 독일에는 유대인 문제를 전담하는 단일한 나치기관이 없었기 때문에, 유대인의 삶과 직간접으로 관계하고 있던 모든 독일인이 ‘파괴기계’의 부품이 돼 파괴 과정에 연루될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즉, 학살이 어떤 특정한 사건이나 계기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사회를 구성하는 거의 모든 집단이 축적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여기에는 유대인도 포함된다. 유대인의 자치기구인 유대인평의회와 학살수용소의 유대인 노동대, 그리고 가스실로 걸어 들어간 유대인조차 파괴기계로 파악했다. 이로 인해 힐베르크는 미국과 이스라엘 시온주의 역사가들로부터 배척당하기도 했다.

번역자인 김동이 동아대 교수는 힐베르크가 이 책에서 제시한 명제를 ‘악의 일상성’으로 정리한다. “공적·사적 영역에서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상적인 실천들이 단 하나의 계기, 즉 우리와 상극인 타자가 제시되자 자동으로 발동되어 가속화되고 과격화하는 자가동력 학살기계로 돌변하더라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악을 저지른 당사자뿐만 아니라 방관자 노릇을 한 지식인 그룹도 학살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힐베르크는 비판적 지식인으로 명성을 떨쳤던 피카소와 사르트르에 대해서 “피카소는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고, 사르트르는 극본을 썼다.”고 지적했다.

1961년 초판이 나온 뒤 1985년, 2003년 개정판이 나왔는데, 한국어판은 힐베르크가 2007년 8월 타계하기 전 번역자에게 보낸 수정본이 추가됐다. 1권 4만 2000원, 2권 3만 80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2009-01-1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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