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뿐인 사법부 과거 반성] “팔순 노모 눈 감으시기 전에 간첩 누명 제발 벗고 싶어요”
정은주 기자
수정 2008-10-21 00:00
입력 2008-10-21 00:00
1년 반 째 재판 기다리는 박동운씨
박씨 가족은 법원만이 희망이라 믿었다. 첫 재판부터 몸에 남은 상처와 멍 자국을 보여주며 고문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신체감정도 신청했다. 그러나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류로 법대를 두드리며 “안기부에서 시인해 놓고 왜 여기서 부인하느냐.”고 오히려 야단쳤다. 그는 무기징역형을 확정받았다.
94년 광주교도소 교도관을 통해 ‘재심´이란 절차를 처음 알게 된 뒤 그는 법전을 읽으며 다시 희망을 키웠다.98년 8월15일 18년 만에 교도소에서 나오자마자 월북했다고 인정된 71년 10월3~24일, 그가 남한에 있었다는 증거를 찾아다녔다.10월14일 직장을 대구에서 진도로 옮기며 박씨가 직접 동사무소에 가서 주민등록표를 퇴거한 기록이 남아 있었다.“안기부의 협박 때문에 법정에서 위증했다.”는 동료들의 진술도 나왔다. 지난해 4월 새로운 증언과 증거를 첨부해 서울고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그해 10월 국가정보원(옛 안기부) 진실위에서도 안기부가 박씨 가족을 간첩으로 조작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법원은 오늘까지 묵묵부답이다.
박씨의 기다림이 간절한 것은, 스물여덟에 남편을 잃고 삼형제를 키우다 고문까지 받은 어머니,4년간 옥살이한 뒤 두 아들의 옥바라지까지 한 어머니, 손가락질하는 동네 사람을 피해 절에 숨어 사신 그 여든 네살 노인이, 이제 혼자서 일어설 수도 없을 만큼 쇠약해져 입원 치료를 받고 있어서다.
“병원에 갈 때마다 어머니는 ‘재판은 어찌 돼가냐?’ 묻는데….” 그는 끝내 목이 멨다.“어머니 가슴에 얹혀져 있는 무거운 돌덩이를 내려놓고 저 세상에 가실 수 있도록 간첩 누명을 풀어주길 부탁한다.” 그는 신속한 재판 진행을 바라며 어머니의 건강진단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2008-10-21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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