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대못질 설전(舌戰)/윤재근 문학평론가
수정 2008-10-14 00:00
입력 2008-10-14 00:00
정치할 줄(爲政) 모른다(不知). 물 건너려는 사람을 건네줄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누구나 마음대로 물 건너다닐 수 있는 다리를 놓아주려고 했더라면 그 대부를 두고 맹자는 분명 정치할 줄(爲政) 안다(知)고 칭송했을 터이다.
따지고 보면 정치는 시혜를 멀리해야 한다. 몇몇 사람에게 이롭다면 그것은 은혜의 베풂이지 정사(政事)는 아니다. 정치는 모든 시민에게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게 하는 것이지 미운 놈 고운 놈 편 가르기를 해 혜택을 쏠리게 해서는 ‘정(政)’은 허물어지고 만다.
시혜가 그물코를 고쳐주는 일이라면 시정(施政)은 그물의 벼리가 끊어지지 않게 하는 일이다. 그물코 중에서 몇 구멍이 터진다 해도 그물 노릇할 수 있지만 그물의 벼리가 끊어져 버리면 그물 전체가 쓸모없어져 버린다. 그러니 치자는 나라의 기강(紀綱)을 손질해야지 나라의 조목(條目)에 매달려서는 안 된다. 그래서 큰 정치에는 네 편 내편이 없다. 편 묶어 편 가르기 하는 정치는 더럽고 작다.
서민한테 대못질해서도 정치가 아니고 부자한테 대못질해서도 정치가 아니다. 서민도 좋고 부자도 좋아할 자리를 찾아 다리를 놓자고 여야(與野)가 서로 주먹다짐을 할수록 정치는 펄펄 살아난다. 그러나 ‘세금폭탄’이란 말이 터졌을 때 이미 그런 다리는 폭파되고 말았던 셈이다.
서글픈 갑을의 설전도 그런 폭탄 탓으로 터졌던 셈이다. 세금폭탄이 아무리 정교한 스마트폭탄이라 한들 알짜부자들은 완벽한 방공망에다 패트리엇까지 완비돼 끄덕도 않는다. 세금폭탄이란 것이 부동산에만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나라가 정해준 억지부자들한테만 폭파의 위력이 가해질 뿐이다. 집 한 채로 부자를 정하다니 단순논리치고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살고 있는 집이 6억∼9억원 이상이면 ‘너 부자야’ 딱지를 붙여놓고 세금폭탄을 투하해 그 위력을 서민층으로 돌리겠다는 발상은 임꺽정의 시혜는 될 수 있을지언정 결코 시정(施政)은 아닐 터이다.
부자를 편들어줄 생각은 조금도 없다. 그렇다고 부자를 털어다 서민층에 보태주겠다는 어긋난 치자(治者)를 편들어줄 생각은 더더욱 없다. 다만 이 땅에 부럽기도 하고 존경받을 수 있는 부자들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부자를 미워하고 저주한다면 제가 부자가 못 되어 시기하는 심술일 뿐이다. 가난뱅이가 되고 싶니 부자가 되고 싶니 물어서 가난뱅이 되고 싶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자야말로 사기꾼이다. 그러니 정치가 우리 모두 부자 되게 험한 물길 위로 튼튼한 다리를 놓아줄 일을 찾아 시행하면 된다.
윤재근 문학평론가
2008-10-14 30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