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노벨 문학상 르 클레지오] 운주사(雲住寺),가을비/르 클레지오
수정 2008-10-10 00:00
입력 2008-10-10 00:00
꿈꾸는 눈 하늘을 관조하는
와불
구전에 따르면, 애초에 세분이었으나 한분 시위불이
홀연 절벽쪽으로 일어나 가셨다
아직도 등을 땅에 대고 누운 두분 부처는
일어날 날을 기다리신다
그날 새로운 세상이 도래할 거란다.
서울거리에
젊은이들, 아가씨들
시간을 다투고 초를 다툰다.
무언가를 사고, 팔고
만들고, 창조하고, 찾는다.
운주사의
가을단풍속에
구름도량을 바치고 계시는
두분 부처님을
아뜩 잊은채
찾고 달리고
붙잡고 쓸어간다
로아*의 형상을 한 돌부처님
당신(堂神)을 닮은 부처님
뜬눈으로 새는 밤
동대문의 네온불이
숲의 잔가지들만큼이나
휘황한 상점의 꿈을 꾸실까?
( … 중략 … )
기다리고 웃고 희망을 가지고
사랑하고 사랑하다
서울의 고궁에
신들처럼 포동포동한
아이들의 눈매는 붓끝으로 찍은 듯하다
기다리고 나이를 먹고 비가 온다
운주사에 내리는 가랑비는
가을의 단풍잎으로 구르고
길게 바다로 흘러
시원의 원천으로 돌아간다.
두 와불의 얼굴은 이 비로 씻겨
눈은 하늘을 응시한다
한세기가 지나는 것은 구름하나가 지나는 것
부처님들은 또 다른 시간과 공간을 꿈꾼다
눈을 뜨고 잠을 청한다
세상이 벌써 전율한다.
서울-파리
2001년 10월 22일
*로아의 신 : 곧은 콧대에, 반원형 눈썹을 한, 긴 얼굴의 이 아프리카의 신은 아이티를 거쳐서 한국 불교의 평심 속에도 발견된다.
*번역 : 최미경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교수)
2008-10-1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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