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결 가벼워진 시적 행보 뜨거운 생명을 뿜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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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 기자
수정 2008-09-12 00:00
입력 2008-09-12 00:00

【 광휘의 속삭임 】

“조물주는 만물을 창조할 때/바로 그것들이 되어 그렇게 했다/새를 창조할 때는/새와 함께 날고/개를 만들 때는/개와 함께 뛰었으며/물고기를 창조할 때는/물고기와 함께 헤엄쳤다/틴토레토의 ‘동물창조’에서 보듯이/(모든 창조의 최상의 길)”(‘창조’)

시인 정현종(69)씨가 43년의 시력이 오롯이 담긴 아홉번째 시집 ‘광휘의 속삭임’(문학과지성사)을 펴냈다.‘견딜 수 없네’ 이후 5년 만에 내놓은 이번 시집에는 표제작을 비롯,‘하루’‘걸음걸이’‘거대한 무의식’ 등 날빛의 생명력이 충만한 시 60편이 실렸다.

정현종 시인 5년만에 9번째 시집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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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허무주의적이고 거창한 비유를 걷어내고 사뭇 생동감 넘치는 삶의 행보를 내딛는다.“아침에는/운명 같은 건 없다/있는 건 오로지/새날/풋기운!/운명은 혹시/저녁이나 밤에/무거운 걸음으로/다가올는지 모르겠으나,/아침에는/운명 같은 건 없다.”(‘아침’) 아침의 세계에서 현재는 간단없이 과거와 조우하며 인간의 운명과 역사를 새롭게 만들어 낸다.

한결 가벼워진 시적 행보는 안과 밖, 나(自)와 남(他), 사물과 시의 경계에 구애받지 않는 무한의 세계로 확장된다.“방 안에 있다가/숲으로 나갔을 때 듣는/새 소리와 날개 소리는 얼마나 좋으냐!/저것들과 한 공기를 마시니/속속들이 한 몸이요 /저것들과 한 터에서 움직이니/그 파동 서로 만나/만물의 물결,/ 무한 바깥을 이루니……”(‘무한 바깥’) 시인은 닫힌 오감(五感)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온갖 사물들의 날빛을 그대로 받아들여 뜨거운 생명력을 뿜어낸다.

시인에게 ‘푸르다’는 것, 그것은 바로 사물에서 뻗어 나오는 힘찬 에너지의 상징이다.“금세기의 우리들이여/시간을 잃은 지 오래되지 않았는가./생각해보자, 예컨대/돈과 기계에 마비되어/바삐 움직이면서/시간을 돈 쓰듯 물건 쓰듯 쓰기만 하고/시간 자체!를 느끼는 일은 전무한 듯/하니, 시간의 꽃인 그 시간 자체는/어떻게 되었는가.”(‘꽃 시간2’ 중에서) 시인은 시간의 주인으로 자처해온 인간이 시간을 물 쓰듯 하면서, 이내 시간의 노예로 전락할 수 있음을 서늘한 시어로 깨우쳐 준다.

시인과 시가 자연스럽게 하나의 몸으로…

그렇지만 날빛에서 새로운 희망을 엿본다.“시간의 물결을 보아라./아침이다./내일 아침이다./오늘 밤에/내일 아침을 마중 나가는/나의 물결은/푸르기도 하여, 오/그 파동으로/모든 날빛을 물들이니/마음이여/동트는 그곳이여”(‘꽃 시간1’) 요컨대 시인은 뭇생명과의 내적 교감을 통해 보다 광대한 시적 세계로 자장(磁場)을 넓혀 간다.

문학평론가 박혜경씨는 “사물의 바깥에서 사물을 해석하고 그에 대한 복잡한 의미의 얼개를 부여하는 대신, 사물의 깊숙한 곳에서 흘러나오는 그 광휘의 속삭임이 시인과 시가 자연스럽게 하나의 몸으로 들어올려진 시”라고 평한다.7000원.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2008-09-12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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