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가 오순도순 함께 가꾸는 가족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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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정 기자
수정 2008-07-11 00:00
입력 2008-07-11 00:00

세 엄마 이야기

빠알간 뾰족구두를 신은 엄마가 지금 막 이삿짐을 풀고는 빈 밭을 바라보고 섰네요. 도회지에서 시골로 이사온 첫날, 엄마는 ‘저기에다 콩을 심어야지.’ 당장 마음 먹는답니다.

근데 생각처럼 쉬울 턱이 없지요. 달랑 콩 열다섯알을 심고는 엄마는 밭이랑으로 펄썩 주저앉고 맙니다.“엄마!도와줘!”

이어지는 이야기는 상상의 울타리를 훌쩍 뛰어넘습니다. 도와달라는 엄마의 말에 엄마의 엄마가 뛰어오고, 또 엄마의 엄마의 엄마가 밭으로 달음질쳐 오지요. 엄마가 호미로 주욱 선을 그으면, 엄마의 엄마는 삽으로 밭이랑을 만들고, 엄마의 엄마의 엄마는 밭을 간답니다. 이제 콩이 무럭무럭 자라날 일만 남았겠지요?

거창한 주제어를 매달고 있지 않아도 아이 손에 쥐어주기 흐뭇한 책이 있습니다.‘세 엄마 이야기’(신혜원 글·그림, 사계절 펴냄)의 행간에는 묘한 즐거움이 스며 있습니다.

우선, 애써 교훈을 던지지 않는데도 곱씹을 만한 메시지를 발견하게 만드는 대목이 신통하네요. 어린 화자를 포함해 4대가 오순도순 함께 다독이며 사는 소박한 전원의 삶은, 핵가족 시대에 가족의 참가치를 돌아보게 하는 진지한 울림입니다. 어느덧 가을이 와서 콩꼬투리가 누렇게 익었을 때 엄마는 또 엄마를 부릅니다.“엄마!도와줘!” 한 달음에 달려온 ‘엄마들’이 콩밭을 ‘접수’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가을 햇살 가득한 시골 너른 마당엔 콩타작이 한창입니다.



온가족이 모여 메주를 만들고, 그날 밤 엄마와 ‘엄마들’은 닮은꼴의 꿈을 꿉니다. 함께 맛난 된장을 먹는 꿈을요. 보물찾기 하듯 행간을 뒤져 읽는 재미가 큽니다. 협업의 기쁨, 콩으로 만드는 음식의 종류, 가족의 의미 등이 짧은 글 구석구석에 숨어 있습니다. 초등 저학년까지. 98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2008-07-11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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