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박경리 타계] “작가로서의 전범 보여주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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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연 기자
수정 2008-05-06 00:00
입력 2008-05-06 00:00
작가 박경리의 한평생은 그대로 한국 현대문학의 거울이었다.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그의 짙디짙은 문학적 그늘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었던 동시대의 작가는 아마도 없었을 터.

소설가 오정희씨게 고인은 문학소녀의 꿈을 향해 나아가게 해준 나침반 같은 존재였다. 부음 소식을 들은 오씨는 “박경리 선생님은 내가 문학소녀였던 시절부터 문학적으로 굉장히 큰 영향을 주셨고 개인적으로 알기 전에도 많이 흠모했던 분”이라며 “여성이라는 어떤 틀을 뛰어넘고 큰 문학세계를 이루셨다.”고 말했다. 또 “원주시 단구동 자택에 계실 때나, 토지문화관에 계실 때나 찾아뵐 때마다 책상 위에 원고지와 만년필을 항상 올려놓고 계셨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추억하기도 했다.

소설가 박범신씨도 “선생님은 모든 후배 작가들에게 작가로서의 삶을 위한 전범을 보여주신 큰 산 같은 분”이라며 “예전에 토지문화관에서 집필할 당시 밤 늦게 돌아오면 불이 다 꺼진 가운데 선생님 사저에만 불이 켜져 있어서 그 불빛을 지도로 삼아 돌아오곤 했다.”고 회고했다. 그에게 그 불빛은 두고두고 작가로서의 삶에 있어 거대한 상징이 됐다고 했다.

소설가 조정래씨는 “우리 문학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주인공”이라고 고인을 회고하며 “홍명희의 ‘임꺽정’ 이후 끊어졌던 대하소설의 맥을 이은 분이셨다.”고 말했다. 중학교 때 ‘토지’ 1부를 밤새워 읽고 외웠었다는 소설가 공지영씨도 고인에 대한 기억이 각별했다.“1996년 선생님 댁을 찾아갔을 때 책상 옆에 놓인 손재봉틀을 보여주셨다.”면서 “문학에 실패하면 삯바느질을 할 각오로 글을 쓴다고 말씀하셨던 그 순간은 두고두고 두려운 가르침으로 남았다.”고 말했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2008-05-06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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