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경찰, 전화사기범에 신고자 신원 유출 항의하자 “공권력에 대드냐” 면박
이경주 기자
수정 2008-04-11 00:00
입력 2008-04-11 00:00
●신고자, 인권위에 진정서 제출해 징계요구
금융업체 직원인 김모(29)씨는 지난달 27일 “N백화점에서 98만원이 결제됐는데 맞느냐. 잘못 결제됐다면 은행 현금인출기로 가서 내가 불러주는 계좌번호를 눌러라.”라는 전화를 받았다. 평소 보이스피싱 사건을 많이 접한 김씨는 속는 척하면서 사기범이 불러주는 두 은행의 계좌번호 2개를 받아 적었다. 김씨는 곧바로 두 은행에 공문을 보내 사기범의 계좌에 대해 지급정지를 요청했다. 지급이 정지되면 사기범이 은행을 찾을 것이라는 기지를 발휘한 것이다.
김씨의 신고를 받은 서울강동경찰서는 지난 4일 시내 한 은행에서 통장해지를 시도하던 이모(31)씨를 붙잡았다. 김씨는 보복을 우려해 경찰청에 자신의 개인정보를 피의자에게 알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하지만 김씨는 지난 8일 이씨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이씨는 김씨의 이름과 직장, 전화번호 등을 상세히 파악하고 있었다. 이씨는 “다른 피해자들에게 돈을 돌려주려고 하니 당신이 은행들에 요청한 지급정지를 풀어 달라. 당신의 신상정보는 경찰이 알려줬다.”고 말했다.
당황한 김씨는 경찰에 따졌지만 “공권력에 대드는 것이냐.”는 핀잔과 “다른 피해자가 누군지 알아내서 당신이 돈을 돌려 주라.”는 황당한 요구까지 들어야만 했다. 신고자에 불과한 김씨가 다른 피해자가 누구인지를 알 리가 없었다.
김씨는 “보이스피싱 사기범들은 조폭과 연결됐다는데 보복이 두렵다.”면서 “상을 줘도 부족할 판에 피의자에게 신고자를 가르쳐 줘도 되느냐.”며 분개했다.
●경찰 “다른 피해자에 환불위해 불가피”
이에 대해 경찰은 “다른 피해자들의 돈을 찾아주려면 지급정지를 시킨 신고자의 협조가 필요해 피의자에게 신고자의 개인정보를 알려줬다.”면서 “이씨는 단순히 보이스피싱 범죄자들에게 대포통장의 명의를 판 피의자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김씨는 어떤 경우든 신고자의 개인정보는 보호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인권위 등에 진정을 냈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2008-04-11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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