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는 전쟁터… 공포영화보다 무서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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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8-04-01 00:00
입력 2008-04-01 00:00

할리우드 입성 재미동포 이지호 감독

“솔직히 전쟁이었어요. 산 넘어 산이었죠.”

스릴러 영화 ‘내가 숨쉬는 공기’(The Air I Breathe)로 할리우드에 데뷔한 재미교포 출신 이지호(35) 감독은 제작과정을 묻자 큰 숨부터 한번 들이마셨다. 영화의 국내 개봉(9일)을 앞두고 내한한 그를 31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마주했다. 배우 김민의 남편이기도 한 감독은 동석한 통역이 무색할 만큼 인터뷰의 대부분을 한국어로 자연스럽게 소화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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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호 영화감독
이지호 영화감독
포레스트 휘태커·앤디 가르시아 등 톱스타 포진

그가 직접 시나리오까지 쓴 ‘내가’는 제작비 60억달러의 저예산 독립영화. 하지만 출연진은 웬만한 할리우드 대작 못지않다. 지난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포레스트 휘태커를 위시해 ‘대부’의 앤디 가르시아, 브렌든 프레이저, 사라 미셀 겔러, 줄리 델피 등 톱배우들이 포진했다. 캐스팅에만 2년을 공들인 결과다.“앤디 가르시아는 신인 감독과는 절대 일하지 않는다는 규칙을 갖고 있어요. 첫 미팅 자리에서 그는 선글라스를 끼고 시가를 피우다 연기를 제 얼굴에 내뿜더군요. 굉장히 무서웠죠.(웃음)”

그러나 그는 감독에게 잊지 못할 배우가 됐다.“멕시코시티에서 촬영하던 중 제가 대상포진에 걸려 시력을 잃을 뻔했는데, 가르시아가 ‘감독이 낭떠러지로 떨어지면 모두 다 함께 떨어진다.’며 스태프들을 독려하더군요. 정말 축복이라 생각했어요.”

영화계 입문의 결정적 계기는 웨슬리안 대학에 재학중이던 19세 때.“새벽 4시에 철학 에세이를 쓰고 있었어요. 갑자기 눈이 펑펑 왔는데 그 날이 바로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이 죽은 날이었죠. 갑자기 나도 내일 죽을 수 있으니 하고 싶은 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음날 당장 에세이는 집어치우고, 영화를 복수 전공으로 신청했죠.”

한·미 교집합에 놓인 자신의 정체성 담아

이번 영화에는 미국과 한국의 교집합에 놓인 자신의 정체성을 담았다.“미국은 개별주의이고 우리나라는 집단 문화잖아요. 저는 재미교포로서 그 중간에 있고요. 이 영화는 ‘오즈의 마법사’에서 네 주인공이 각자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이야기와 인간은 희로애락의 네 가지 감정을 통해 연결된다는 한국적 이야기를 엮었어요. 개인주의와 인간애를 함께 묶은 거죠.” 영화의 캐릭터는 그가 한국에 머물던 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만난 회사원과 가수 등에서 착안했다.

그는 차기작으로 액션영화 세 편을 진행 중이다.2일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들에게 ‘할리우드 입성기´를 강의할 예정이다. 학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는 뭘까.“많은 고통을 준비해 두라고 말해 주고 싶어요. 영화 시장은 공포영화보다 더 무서워요. 의사, 변호사, 회사원들은 승진의 평가기준이 있지만 영화인에게는 그런 게 없죠. 늘 변하니까요. 우쭐거리지 말고 스스로를 믿고 자신감을 갖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글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2008-04-01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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