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획일적 높이 규제는 현대판 쇄국/정동일 서울 중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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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8-03-28 00:00
입력 2008-03-28 00:00
어느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는 한국 경제상황을 ‘샌드위치 코리아’라고 묘사했다. 비단 경제뿐만 아니라 국가간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는 시대적 상황을 대변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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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일 서울 중구청장
정동일 서울 중구청장


장기 경기침체로 고통 받던 일본은 30년간 지켜온 국토균형발전의 기조를 허물고 도쿄 집중개발 논리로 전환해 경제 불황을 타개했다. 도쿄 곳곳에는 ‘우후죽순’이라는 표현이 걸맞을 만큼 고층빌딩이 지어지고 있다.

‘카나리 워프’ 개발 사례는 중세 석조문명이 그대로 살아있는 런던의 개발 규제론자의 강력한 반발을 극복하고 영국을 몰락에서 구한 도심개발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사막의 꽃’이라 불리는 두바이는 자유로운 상상력을 보장하기 위해 규제를 최소화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서울을 돌아보자. 수도 서울의 중심인 도심을 살리기 위해 선진 도시들처럼 각종 도심 재생 정책이 집중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도심에 획일적으로 설정된 건축물 높이 규제는 도심 재생의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토지의 수직공간 활용을 제약해 기형적인 토지이용을 초래하고, 아름답고 창의적인 건축을 방해하는 큰 원인이 되고 있다.

높이 규제 찬성론자는 도심의 건물 높이를 90m 이하로 획일적으로 규제함으로써 600년 도읍지의 역사성을 보호할 수 있다고 한다. 역사성 훼손의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지만, 건물의 높이가 서울 주변의 산 높이(낙산 90m)를 넘지 않도록 했다고 역사성을 보호할 수 있다는 가정은 수긍하기 어렵다. 건물 높이가 높아질수록 역사성은 훼손된다는 반비례 관계를 주장하는 것은 논리가 아니라 검증되지 않은 주장이나 가설에 불과하다.

높이 규제는 도시의 번영을 목적으로 하는 한가지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도시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엮으며 민족의 혼과 삶을 담는 그릇으로 역사를 보존하며 새로운 역사를 써나갈 수 있도록 하는 방편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와 전혀 다른 환경과 역사를 갖는 로마, 파리 등 석조 문명의 선진 도시들과 유사한 획일적 높이 기준을 적용하고는 높이 규제 자체를 신성시해 다른 일체의 문제 제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이른바 ‘쇄국(鎖國) 도시정책’과 같은 편협된 사고를 고치지 않는 한 서울은 세계 도시간 무한경쟁 시대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도심의 획일적 높이 규제를 옹호하는 이들은 건물 높이를 규제해도 도시경쟁력에 영향이 없다고 말한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손발이 묶인 이보다는 자유로운 상태에서 싸우는 이가 이길 것이라는 데 돈을 걸 것이다. 건물의 높이는 현재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과 건축법 등 관련법뿐만 아니라 건축 심의 등 절차를 통해 수많은 제어 장치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문화재 보호를 위해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의 높이 제한이면 충분하다.

도심 전체를 주위의 산 높이 이하로 획일적 규제함으로써 역사성을 보호한다는 모호한 명분은 분명 폭넓은 검토와 의견 수렴이 필요하며 시급히 다시 돌아보아야 할 지나친 규제이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와 같이 도심 중의 도심을 이왕 재개발할 거라면 600년 도읍지 서울을 세계 일류 브랜드 가치를 지닌 도시로 거듭날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모아야 한다. 이를 위해 도시문제 해결에 유리하며, 역사성 보호에도 더욱 효과적인 상징적 초고층빌딩 건립이 가능하도록 높이 규제부터 풀어줘야 한다. 수직적 개발은 수평적 개발보다 600년 고도의 샛길과 물길 등 옛 도시구조를 덜 망가뜨리게 될 것이며 아름다운 도시경관을 연출하기에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정동일 서울 중구청장
2008-03-2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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