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니뇨와 제국주의로 본 빈곤의 역사/마이크 데이비스 지음
이문영 기자
수정 2008-02-29 00:00
입력 2008-02-29 00:00
19세기말 세계적 기근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분석
●“기근은 자연재해 아닌 정치비극”
‘엘니뇨와 제국주의로 본 빈곤의 역사’(정병선 옮김, 이후 펴냄)는 ‘영예로운 번영’ 뒤에 숨겨진 이면의 진실을 의도적으로 외면해온 서구 역사학계에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질문은 1876년부터 1902년 사이에 벌어진 대재앙, 최소 3000만명이 죽은 세 차례에 걸친 가뭄에 초점을 맞춘다.
인도·중국·브라질 등지에서 발생한 1876∼1879년의 1차 대한발은 시작일 뿐이었다.1889∼1891년의 2차 가뭄 땐 에티오피아와 수단에서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 사망했다. 열대 지방 전역과 중국 북부에 3차 가뭄이 밀려든 1896∼1902년엔 말라리아, 이질, 천연두, 콜레라 같은 전염병이 수백만명의 목숨을 빼앗았다. 과학자들은 이같은 대가뭄이 엘니뇨 때문이란 사실을 밝혀냈다. 그러나 저자는 ‘대기근=기후재앙’이라는 식의 정의는 또 다른 진실 은폐라고 강조한다.
지구 기후체계와 후기 빅토리아 시대의 세계경제 사이엔 극단적인 사건들이 운명적으로 맞물려 있었다는 것이다. 저자가 보기에 엘니뇨라는 기후 현상은 당시 제3세계 빈곤에 끼얹어진 휘발유에 불과하다.
저자의 주장은 ‘기근의 정치생태학’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대기근을 자연재해가 아닌 정치와 계급의 문제로 접근한다. 혹독한 가뭄은 인간이 개입하는 인재(人災)이고, 식량 지배권의 문제이며, 피할 수 있었던 정치비극이라는 것이다. 아사자가 속출하던 1899∼1902년 인도 봄베이(현 뭄바이)에서 작성된 공식 기근보고서는 “식량 공급은 항상 충분했다.”고 적고 있다. 극단적인 기후사태와 결합한 끔찍한 불황은 식량 접근권의 문제이고, 대규모의 굶주림을 기근으로 규정짓는 데는 사회 내부의 권력관계가 작동하고 있다는 얘기다.
●대기근이 던지는 가시 같은 질문
국제관계의 냉혹한 역사는 약소국의 불행을 딛고 자국의 호황을 추구한 강대국이 적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저자는 “독일은 1890년대 후반 산둥 반도를 황폐화시킨 홍수와 가뭄을 빌미로 북중국에서 자신의 세력권을 공격적으로 확대했고, 같은 시기 미국도 가뭄과 기근, 질병을 빌미로 필리핀 공화국을 분쇄했다.”고 지적한다.
전 지구적 가뭄은 영토 침탈을 향해 내달리는 열강에게 제국주의적 폭주를 허락하는 ‘녹색 신호등’이었던 셈이다.
가뭄은 조선에도 밀어닥쳤다. 저자는 일본의 식량약탈과 동학농민항쟁도 동일한 관점에서 분석한다. 데이비스는 “이 은둔의 왕국을 착취하려던 일본에 가뭄은 절호의 기회를 제공했다.”면서 “조선은 가뭄 속에서도 일본에 쌀을 수출해야 했고, 결국 전라도의 굶주린 농민들은 혁명적 불만을 토로한다.”고 썼다.
저자가 보기에 대기근은 늘 ‘자유롭고 공정한 교환체계’ 아래서 발생했다. 그는 “기근이 발생한 실제 원인은 지역의 소득 붕괴와 결합한 곡물의 자유시장 제도였다.”는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칼 폴라니의 말을 인용한다. 이론이 아닌 현실 속 시장의 역사엔 정치의 역사가 똬리를 틀고 있다는 것이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빈곤과 굶주림의 참상을 전하는 데는 피부 가죽이 고스란히 내려 앉아 뼈가 그대로 드러난 아이의 모습, 그 비극적 장면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부가 역사상 어느 때보다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이때, 그만큼 폭발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빈곤의 세계화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질문은 계속된다. 2만 3000원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2008-02-29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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