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공무원의 영혼과 명철보신(明哲保身)/김명곤 전 문화관광부 장관·연극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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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8-01-25 00:00
입력 2008-01-25 00:00
시경(詩經)의 ‘대아(大雅)·증민(蒸民)´편에 주나라 선왕 때의 재상인 중산보(仲山甫)를 칭송한 노래가 나온다.“현명하고 사리에 밝아(旣明且哲)/자기 몸을 잘 붙들어(以保其身)/밤낮으로 몸을 바쳐/임금님을 섬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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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곤 전 문화관광부 장관 연극인
김명곤 전 문화관광부 장관
연극인


명철보신(明哲保身)이란 숙어의 원전이 된 노래다. 나라를 위해 신명을 바쳐 일하는 관료의 모습을 그린 이 단어의 뜻이, 권력의 눈치를 보며 자기 몸을 지킨다는 뜻으로 추락해 버렸다. 그렇게 추락한 세태를 개탄한 다산 정약용은 당대의 석학인 김매순에게 보낸 편지에서 “명철보신이라는 네 글자가 오늘날 세상을 썩게 하는 으뜸가는 부적이 되고 말았다.”고 한탄했다.

지난 1월 초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국정홍보처 간부가 “우리는 영혼이 없는 공무원들”이라고 한 말이 한동안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그 말을 들은 인수위 부위원장은 “대한민국 공무원이 그래서 되겠느냐?”며 비난했다고 한다. 국정홍보처장은 “그 말은 ‘관료는 영혼이 없다.´고 한 막스 베버의 말을 인용한 것인데, 관료는 어느 정부에서나 그 정부의 철학에 따라 일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라고 해명했다. 이 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공무원 스스로 ‘영혼이 없다.´고 말한 것은 부적절했다. 이 말은 여러 성실한 공무원들에게는 모멸감과 자괴감을, 국민들에게는 공무원에 대한 불신감과 경멸감을 더해 주었을 것이다.

명철보신처럼 ‘공무원´이란 단어도 ‘공공의 업무를 수행하는 공복´이라는 본래의 뜻을 벗어나 부정적으로 추락한 단어다.‘철밥통, 부정부패, 비능률, 무책임, 무소신, 복지부동´ 등은 공무원과 관련해서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들이 되어 왔다. 이러한 공무원의 영혼을 바로잡기 위한 개혁이 역대 정부에서 나름대로 추진되어 왔다. 그런데 이러한 공공개혁은 장기적으로 추진되어야 성과를 볼 수 있는 과제이다. 영국이나 미국 등 비교적 성공했다고 평가 받는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사실은 공공개혁이 정권의 교체와 관계없이 지속적이고 일관성 있는 이념과 전략에 토대를 두고 추진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특정 정파의 이익보다 국민의 이익을 위해 직무를 수행하기 위한 ‘정치적 중립 의무´는 공무원의 영혼을 지키는 방어막으로서 중요한 기능을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나라의 정부는 공무원의 영혼을 충분히 살펴 왔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이번 인수위의 업무보고 과정을 보더라도 몇몇 부처에 대해 지금까지 실행해 온 정책을 부정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공무원들의 영혼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해석될 수 있다. 새 정부가 탄생했으니 새로운 업무보고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공무원들에게 새로운 정책의 방향을 제시하고, 활발하게 토론하고 분석하여 대안을 제시하도록 요구하는 게 정당한 민주주의 절차 아닐까? 또 설령 공무원들의 보고가 새 정부의 철학과 맞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비판할 것은 비판하고, 깊이 있게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도 필요하지 않을까? ‘영혼이 없다.´는 공무원의 말을 비난하면서 실제로 공무원들이 그렇게 되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 부처통폐합, 구조조정, 공무원 감축 등 공직 사회에 강력한 변화가 예고되는 시점이기 때문에 한동안 공무원들의 영혼은 불안에 떨 것이다.

과연 공무원들은 영혼이 없는 걸까? 자신의 영혼을 스스로 버리는 걸까? 아니면 누구로부터 빼앗기는 걸까? ‘현명하고 사리에 밝은´ 영혼을 지닌 공무원들이 ‘자신을 잘 붙들어 매고 밤낮으로 신명을 바쳐´ 나라와 국민을 위해 명철보신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김명곤 전 문화관광부 장관·연극인
2008-01-2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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