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유럽여왕들이 安東 찾는 까닭은/황규호 ‘한국의 고고학’ 상임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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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7-10-04 00:00
입력 2007-10-04 00:00
오는 6∼12일 한국을 방문하는 마그레테 2세 덴마크 여왕이 경북 안동시를 찾을 것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이 무렵은, 중세 그 유명한 스페인 화가의 화풍인 ‘벨라스케스 스카이’보다 더 파란 하늘이 마냥 높고 햇살이 아직은 따사로운 한국의 호시절 가을이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에 이어 두번째로 한국에 오는 유럽 여왕의 이번 가을 행차에서도 안동이 다시 뜰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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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호 언론인
황규호 언론인
유럽 여왕들이 서울로 날아와, 굳이 눈길을 보내는 안동은 전통이 넘치는 고장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네 한국인에게도 진솔한 매무새로 다가오는 원형(原形)의 고향같은 땅이 안동이다. 소백산맥 산자락을 등에 업고, 낙동강 물줄기 한 가닥을 끌어안아 배산임수의 명당이 분명한 마을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마을 큰마당을 노니는 서너 마리의 닭과 삽사리 하나가 보이는 한 폭의 한국화를 상상해도 좋다. 이렇듯 정한(靜閑)한 안동의 전통마을은 고유문화와 자연경관이 한데 어울린 삶의 공동체를 이루었다는 점에서 그 내면세계가 아름답다. 더구나 유학에 무게를 두었다는 뜻에서 추로지향(鄒魯之鄕)으로 일컬었거니와, 실제 걸출한 학자를 숱하게 배출한 인재의 곳간이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안동은 유학 중심의 한국 지성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문주의의 고장이다. 이를 모두 관인(官人)과 사대부들이 일구었다고는 하지만, 그들만이 독차지한 공간은 아니었다. 엘리트 그룹의 틈새를 산 서민들에게도 익숙한 생활문화가 전통으로 자리매김한 흔적이 도처에서 드러난다. 이는 한국인의 기층적 정서를 깔고 태어난 안동의 민속과 맞물린 대목이다. 그림씨를 기묘하게 가미한 고유명사 ‘물돌이동(河回洞)’과 여기 고대광실이 즐비한 마을 한복판에서 오랜 세월을 놀았던 ‘하회별신굿탈놀이’가 그 사례일 것이다.

1999년 안동을 들른 엘리자베스 2세는 이 별신굿탈놀이 한 마당을 구경했고, 한국 최고(最古)의 목조건물 등 많은 문화유산을 경내에 둔 봉정사를 찾아 몸소 범종을 울려 청아한 소리를 들었다. 이번에 안동에 오는 마그레테 2세도 거의 같은 코스를 도는 일정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유럽 여왕들이 하늘길도 제대로 닿지 않는 내륙 안동으로 달려가는 까닭은 어디 있겠는가. 이는 바로 한국의 전통문화 때문인 것이다. 이른바 서양문명을 일상으로 누린 유럽인들에게 안동은 동양의 정신세계를 축약한 신비로운 곡두로 다가올 수 있다. 유구한 역사 속에 이루어진 온갖 경험을 내재한 정신능력 내지 그 총량을 전통문화라고 한다. 그러나 전통은 가꾸고 지킬 때 자생력을 유지하는 속성을 지녔기 때문에 고도의 문화정책이 요구되는 것은 물론이다.

이를 위한 문화정책의 하나로 2000년 정부가 설립한 한국전통문화학교가 충남 부여에서 문을 열었다. 그동안 203명의 졸업생이 나오기는 했지만, 고등교육법상 각종학교로 분류되어 여러가지 불이익이 뒤따른다고 한다. 대학 명칭을 쓰지 못하는 터라, 재학생들이 배움의 열정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까지 나온다. 더구나 대학원 설립의 길이 막혀 학문적으로 깊이 들어간 전문 연구인력을 키우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는 현대와 미래사회의 정신적인 풍요를 전통문화에서 찾는 추세다. 그래서 전통문화 콘텐츠 개발과 더불어 전통문화 재창조에 역점을 두어야 할 시기에 도달했다. 이같은 환경변화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전통문화 교육을 선택이 아닌 필수의 정책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지난해 발의한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법안’이 여태 국회에 계류 중이고 보면, 답답하다. 안동에서 본 것처럼 한국문화의 세계화는 바로 한국적인 데서 출발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황규호 ‘한국의 고고학’ 상임편집위원
2007-10-0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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