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책을 말한다] 나는 바닥에 탐닉한다/천경환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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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7-09-28 00:00
입력 2007-09-28 00:00
바닥이 뜨거운 이야깃거리였던 적은 없었고, 진지한 디자인 비평의 대상이 되었던 기억도 없다.

하지만 알고 보면 바닥은 재미있고, 가끔은 일상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래서, 바닥에 많은 관심과 정성을 기울여야 하고, 또한 아주 중요한 디자인 비평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닥은 햇볕과 빗물을 고스란히 받아내며 시시각각 다양한 표정을 짓고, 그 표정 안에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햇볕과 빗물을 받으며 수만 가지의 표정을 짓는 바닥은 우리의 마음을 윤택하게 한다.

바닥은 바닥을 차지하려는 수많은 사람들의 치열한 싸움터이기도 하다. 사람들 사이의 다양한 관계와 인연의 흔적이 바닥을 통해 은연중에 드러나는 모습은 적잖게 흥미롭다.

자동차가 다니는 바닥인 도로는 자동차 운행에 관한 각종 정보가 빼곡하게 적혀 있는 안내판이다. 건축물의 바닥은 바닥인 동시에 아래층의 천장이 된다. 아파트의 바닥은 종종 윗집과 아랫집 사이에서 소음 때문에 벌어지는 싸움 마당이 되지만, 인테리어의 느낌과 완성도를 결정짓는다.

거리의 바닥 또한, 그 거리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좌우하는 중요한 디자인 요소이다. 눈에 보이는 패턴이나 발바닥으로 느껴지는 촉감으로, 우리들은 알게 모르게 그 거리 특유의 느낌을 머릿속에 새겨두게 된다. 무엇보다 바닥을 통해 그곳에서 벌어지는 삶의 구체적인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바닥은 타임캡슐이다. 천장이 무너지고 벽이 쓰러진 한참 뒤에도 바닥은 홀로 남아서 우리에게 예전의 기억을 전해준다. 바닥을 파헤치는 것으로 우리는 과거와의 대화를 시작한다.

‘나는 바닥에 탐닉한다’로 나의 개인적인 취향과 관점이 독자로부터 공감을 얻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 결과 독자들이 주변의 흔한 사물에 문득 한번쯤 더 눈길을 건네고, 자세히 살펴볼 수 있게 된다면 더 좋겠다.

누구나 바닥을 매개로 가슴 속에 담아 놓은 추억들을 갖고 있다. 햇볕이 따스하게 들어오던 넓은 안방의 노란 장판지. 자잘하고 울긋불긋한 타일이 서로를 의지하고 맞물려있던 욕실바닥. 왁스 향이 켜켜이 밴, 칙칙하게 번들거렸던 교실의 마룻바닥. 콩알만 한 자갈들과 뽀얀 흙먼지가 쌓여 있던, 삭막하게 넓었던 운동장 바닥이 기억난다.

또 촌스럽고 의미를 알 수 없는 패턴이 끝없이 반복되었던 보도 블록과 그 보도 블록 위에 점점이 쌓여 있던 노란 은행나무 잎사귀들. 이 책으로 잊고 지내던 옛 추억들을 되살릴 수 있게 된다면, 더더욱 좋겠다.
2007-09-28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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