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마지막 노래를 들어라/이상철 지음, 이상엽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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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숙 기자
수정 2007-09-14 00:00
입력 2007-09-14 00:00
“일생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하늘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산 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 갈래나 되는지라/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한국 불교계에 가장 큰 자취를 남긴 인물로 추앙받는 성철 스님. 윗글은 지난 1993년 스님이 세상을 떠날 때 남긴 말씀이다. 큰 스님들이 죽음, 즉 열반에 들기 전 후인들에게 남기는 마지막 말이나 글을 열반송(涅槃頌)이라고 한다.

한 유명 목사님이 TV 설교에서 특이하게도 성철 스님의 이 열반송을 인용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는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라는 대목에 매달렸다. 그날 설교의 요지는 이랬다. 평생을 장좌불와(長坐不臥)로 지낸 분이 도대체 무슨 죄를 그리 지었을까.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그리고 어느 순간 생각에 다다랐다. 진정한 깨달음을 얻기 전에 자신이 행한 모든 것이 죄라는 뜻 아닐까. 이걸 기독교식으로 해석하자면 하나님을 영접하기 전 인간이 가진 지식, 권세가 덧없다는 의미와 상통하는 것이 아닐까.

선승들의 열반송은 이렇듯 종교와 상관 없이 큰 가르침을 준다. 조선시대부터 현대까지 선승 65인의 열반송을 담은 ‘내 삶의 마지막 노래를 들어라(이상철 지음, 이상엽 사진, 이른아침 펴냄)’는 이생의 삶을 정리하는 고승들의 한마디를 거울 삼아 스스로를 되돌아 볼 것을 권한다. 각 장마다 스님들의 열반송과 함께 이들의 유명한 일화, 걸어온 길 등이 실려 있다. 속박과 번뇌, 미망과 아집에서 벗어난 적멸의 순간에 전하는 마지막 노래에는 고승들의 삶의 흔적과 선(禪)의 세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스님께서 입적하시고 나서 사람들이 스님의 열반송을 물으면 어떻게 할까요?” “나는 그런 거 없다.”

“그래도 한 평생 사셨는데 남기실 말씀 없습니까?” “할 말 없다.”

“그래도 누가 물으면 뭐라고 답할까요?” “달리 할 말이 없다. 정 누가 물으면 그 노장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갔다고 해라. 그게 내 열반송이다.”

2003년 입적한 서암 스님은 컨테이너 박스, 다리 밑을 집으로 삼아 살았다. 평생 청빈을 몸소 실천한 분답게 열반송 또한 검박하다. 삶 자체로 이미 수행자의 본분을 보여줬는데 무슨 미사여구가 더 필요할까.

생명나눔실천본부 이사장을 맡았던 법장 스님은 열반 후 자신의 법구(승려의 시신)를 연구용으로 기증했다. 스님의 영결식은 종단장 사상 처음으로 다비식 없이 치러졌다.“나에게 바랑이 하나 있는데/입도 없고 밑도 없다/담아도 담아도 넘치지 않고/주어도 주어도 비지 않는다.” 마지막까지 나누고 베푼 스님의 일생이 후세인들에게 더없이 서늘한 울림을 전해준다.



신정아씨 사태와 아프가니스탄 납치문제로 불교와 기독교가 세인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비종교적인 행위로 말미암아 믿음과 구도에 대한 회의가 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종교는 과학과 더불어 인간의 삶을 떠받치는 중요한 기둥이다. 물질문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종교는 삶을 성찰하고 긍정하는 힘이 되어준다. 이 책은 어떤 종교를 믿든 간에 저자의 바람대로 “스님들의 촌철살인 같은 열반송을 통해 작은 명상”의 기회를 갖도록 하기에 충분하다.1만 2000원.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2007-09-14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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