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수의 오버헤드킥] 그라운드 밖의 땀 냄새 밴 ‘명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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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7-07-12 00:00
입력 2007-07-12 00:00
“한 골이면 충분하다.”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 16강전을 앞두고 당시 이탈리아 팀 주장 프란체스코 토티가 내뱉은 말이다. 이 말로 토티는 한국팬들의 비난을 받았다. 그런데 이 말은 축구계의 속담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바이에른 뮌헨의 수문장 올리버 칸도 지난 3월 레알 마드리드와의 유럽챔피언스리그 16강전을 앞두고 이같이 말했다. 큰 경기를 앞두고 상대 팀의 기선을 제압하려는 일종의 번외 경기라고 할 수도 있다.

이처럼 그라운드 바깥에서는 선수와 감독들의 ‘명언’이 종종 탄생한다.

예컨대 “나는 온갖 나쁜 일을 했다. 그러나 축구를 더럽히는 일은 하지 않았다.”는 마라도나의 발언은 유명하다. 실제로 그는 유일무이한 축구의 경지를 보여줬다. 토털 사커의 창시자 리누스 미헬스 감독은 “우승은 어제 내린 눈일 뿐이다.”며 승리를 위한 절치부심뿐만 아니라 늘 승패의 긴장 속에서 살아가는 고독감까지 드러냈다.

그런가 하면 “축구는 생태학적 균형을 잡는 스포츠다.”는 말도 있다. 전 레알 마드리드의 기술고문 호르헤 발다노가 한 말인데, 소설가이기도 한 그는 ‘굳센 체력’만 앞세우고 ‘슬기로운 마음’은 뒷전으로 밀쳐내는 현대 축구를 비판했다. 축구의 기술·심미적 밸런스의 중요성을 드러낸 말이다.

한국축구에도 ‘말잔치’는 있었다. 그런데 대개는 “최선을 다하겠다.”,“팬에게 감사한다.”는 식의 천편일률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선수가 축구장 안에서 온 정열을 다 쏟아냈으면 그것으로 족할 뿐 기자회견에서 그럴 듯한 말을 지어낼 필요는 없다. 언론의 공세에서 선수를 보호할 필요도 있다.

하지만 수많은 팬들이 언론을 통해 선수를 만나야 하는 게 현실이다. 이젠 보다 적극적이고 개성있는 발언이 필요하지 않을까. 물론 억지로 지어낸 ‘멋진 말’은 매력적이지 않다. 명언이란 멋을 부린 말이 아니라 선수와 감독이 축구장에서 모든 것을 쏟아낸 뒤 얻어낸 ‘성찰’에서 나오는 법이다. 그래서 축구장의 명언에는 향기가 아니라 진한 땀 냄새가 배어 있다.

2007년 아시안컵이 시작됐다. 홍명보 코치의 현지 인터뷰에서 그 어떤 미사여구보다 값진, 한국 축구의 현실을 직관적으로 표현한 명언이 들렸다. 그는 “그동안 대표팀의 경기하는 방법이 틀리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하면서 “체력만 강조한 것도 고쳐야 하며 선수들이 너무 정직한 것도 탈”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상황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머리에 피가 나야만 잘 하는 게 아니다.”고 덧붙였다.

과연 그렇다.‘불굴의 투혼’이니 정신력 싸움’이니 하는 말로는 도저히 넘어설 수 없는 어떤 한계점에 한국 축구는 도달한 것이다. 이제는 그 이상을 지향해야 할 때다.‘머리가 피에 나도’ 뛰어야만 하는 투혼으로는 부족한 경지가 따로 있다. 이번 아시안컵을 통해 그 새로운 대지를 젊은 선수들이 밟아보기를 기대할 뿐이다.

축구평론가 prague@naver.com

2007-07-12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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