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수의 오버 헤드킥] 눈여겨 볼 ‘운동기계’ 해방실험

  • 기사 소리로 듣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공유하기
  • 댓글
    0
수정 2007-05-31 00:00
입력 2007-05-31 00:00
연세대 농구부. 수 십년 동안 한국 농구의 대들보 역할을 해 온 전통의 명문이다. 이 연세대 농구부가 지금 획기적인 실험과 훈련을 하고 있다.‘대학스포츠 정상화 프로그램’이라는 다분히 고리타분한 이름이지만 획기적인, 그러나 어떤 점에선 지극히 타당하고 상식적인 실험이다.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는 모든 수업에 빠지지 않아야 하며 시험도 여느 학생과 다를 바 없이 제대로 치러야 한다.

선수들은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이중고 때문에 시행 초기에는 부작용도 많았다. 지난달에는 4학년을 제외한 전원이 기숙사를 이탈해 충남 천안까지 ‘도망’쳤다가 3일 만에 돌아온 적도 있다. 그러나 학교측은 이 정도쯤은 새로운 실험의 과정에서 빚어질 수 있는 찰과상쯤으로 여겼다.

또 한 곳이 있다. 최근 끝난 무학기배 중등부 전국축구대회에서 우승한 울산의 현대중학교다. 프로구단 울산 현대와 명맥을 같이 하는 이 학교의 선수들은 일반 중학교의 인프라와는 비교가 안될 만큼 최고 수준의 시설에서 훈련한다. 그런데 더 중요한 건 반드시 수업에 들어가야 한다는 점이다.

프로의 꿈은 키우지만 아직 엄연한 어린 학생일 뿐이다. 장래에 여러 이유로 축구를 그만 두게 될 경우 중·고교 시절 오로지 공만 차고 교실에는 들어간 기억조차 없다면 성인으로 이 사회를 살아가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오로지 공차는 일밖에 모르는 일이 생기지 말아야 한다.

연세대 농구부와 현대중 축구부가 시도하는 신선한 실험이 주목받는 건 아직도 축구를 비롯한 거의 모든 종목에 걸쳐 사실상 ‘운동기계’라는 비인간적 상황이 개선되지 않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물론 이 신선한 실험도 연세대가 전통 사학의 명문이고, 현대중학교 역시 막강한 인프라를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모든 일의 핵심은 의지에 달려 있다. 거의 모든 중·고교 팀들이 큰 대회에서 성적을 내지 못하면 존폐의 위기에 내몰리는 악조건 속에 있다. 학생들에게 들어가서 공부하라고 말하기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자라나는 선수들이 공차는 것밖에 모르는 성인이 되는 걸 그저 무덤덤하게 받아들일 때는 더 이상 아니다.

성장기에 정상적인 교육을 받는 것은 그 어린 학생들의 당연한 권리이고, 그들에게 공부할 기회를 제공해야 하는 건 우리 성인들의 의무다. 이 신성한 권리와 의무가 축구장이라고 해서 예외가 되어서는 절대 안될 일이다.

축구평론가 prague@naver.com

2007-05-31 29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
원본 이미지입니다.
손가락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확대해 보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