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면 기자의 시사 고사성어] 四體不勤 五穀不分(사체불근 오곡불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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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7-05-05 00:00
입력 2007-05-05 00:00
춘추시대 공자는 자신의 정치적 주장을 널리 알리고 관철시키기 위해 안회, 자로 등 제자들과 함께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다. 주유열국(周遊列國)이다. 어느날 공자가 길을 걷는데 자로가 따라가다 뒤처졌다. 이에 자로는 밭에서 김을 매는 장인(丈人·나이든 어른)을 보고 “우리 선생님을 보지 못했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장인은 이렇게 말했다.“팔과 다리를 부지런히 움직이지 않고 다섯 가지 곡식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을 어찌 선생이라 할 수 있소(四體不勤 五穀不分 孰爲夫子).” 밭을 직접 갈거나 곡식의 씨앗을 나눠 심을 줄도 모르는 인간을 어떻게 선생이라고 존경해 부를 수 있냐는 질책이다. 이를 전해들은 공자는 그가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고 찾아가 보았지만 그는 온데간데없었다고 한다.

‘논어’ 미자편(微子篇)에 나오는 이야기다.`사체불근 오곡불분´이라는 성어는 이렇듯 선비들을 조롱하는 말이다.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의 대선 불출마 선언은 그야말로 사체불근하고 오곡불분해서 문약(文弱)에 빠지기 쉬운 학자의 전형을 보여준 한심한 사건이다. 책상물림의 한계인가. 끊임없는 정치 저울질로 날을 지새다 결국 새로운 당(黨)을 만들 힘이 없다며 주저앉아 버린 그의 기회주의 행태는 이기적이기까지 하다. 정치판을 떠나는 것이야 개인의 일일지 모르지만, 극도의 정치불신을 초래한 자신의 말과 행동에 대해서는 응분의 사과와 반성이 있어야 한다. 정 전 총장은 그동안 학자라기보다는 권력을 탐하는 ‘정치교수’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줬다.“충청인이 나라 가운데서 중심을 잡아 왔다.”느니 “이론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문제를 더 멀리 깊게 볼 수 있다.”느니….

정 전 총장이 다시 학자로 돌아간다면, 그는 ‘맹자’의 한 구절을 새겨둘 만하다. 학문지도무타 구기방심이이의(學問之道無他 求其放心而已矣). 학문의 길이란 다름이 아니라 놓쳐 버린 자기 마음을 다시 찾는 것이라는 뜻이다. 누구든 자기 자신을 스스로 헤아리지 못하는 부자량(不自量)의 우를 범한다면, 그 결과는 비극이다. 학자는 학자의 길, 정치인은 정치인의 길이 있는 것이다.

jmkim@seoul.co.kr

2007-05-05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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