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의인(義人)의 기억/김학준 지방자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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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6-11-11 00:00
입력 2006-11-11 00:00
김구 선생 암살범 안두희를 수차례 응징해 ‘천적’으로 불리는 권중희를 처음 본 것은 고등학생 때였다. 그는 1970년대 말까지 이화여대 앞 로터리에서 기원을 운영했는데, 조용하면서도 인정이 많아 손님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그래서 그가 1992년 안두희를 폭행하고 경찰에 갇혔을 때 ‘기원 아저씨’를 떠올리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사람이 이렇게 달라질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쨌든 그는 죄책감 없이 교만하게 살아온 안두희에게 ‘임자’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는 안두희가 박기서에게 살해된 뒤에도 예전의 평온한 모습을 되찾지 못했다. 안두희를 추적해 온 15년을 견딜 만큼 재산이 넉넉지 못했기에 그는 ‘궁핍’이라는 또 다른 천적을 만들었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의인(義人)’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돈키호테나 테러범쯤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어쨌든 안두희에게 “죄를 지으면 이렇게 괴롭구나.”라는 사실을 깨우쳐준 것은 권중희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을까.

김학준 지방자치부 차장 kimhj@seoul.co.kr
2006-11-11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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