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회의 ‘출총제 대안’ 합의못해
경제부처의 ‘타워 컨트롤’ 기능이 턱없이 부족함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일각에서는 공정거래위원회의 ‘밥그릇 챙기기’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권오규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과 권오승 공정위원장, 정세균 산업자원부 장관 등은 9일 오전 서울시내 모처에서 배석자 없이 만나 막판 절충을 시도했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다음 일정도 잡지 못했다.
오는 14일쯤 대통령 주재 장관회의까지 의견을 조율한다는 생각만 갖고 돌아섰다.
회의에선 권 위원장이 앞서 밝힌 ‘신규 순환출자 금지’와 ‘중핵기업 출총제’ 방안이 집중 논의됐다. 하지만 권 부총리는 중핵기업 형태로 출총제가 유지되는 점과 기존 순환출자 지분 해소 방안에 이의를 단 것으로 전해졌다.
재경부 관계자는 “공정위의 안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권 위원장의 고집이 너무 세다는 말과 함께 법학자로서의 지나친 ‘오기’라는 말도 곁들였다. 공정위가 새로운 안을 갖고 오지 않으면 장관들이 다시 만나도 달라질 게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이미 실무진의 손은 떠났다고 말했다. 합의점 도출은 장관들, 특히 권 위원장의 결정에 달렸다고 밝혔다. 기업환경개선대책 등 경기 살리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권 부총리로서 기업에 부담을 주는 대안을 받아들이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권 위원장은 앞서 “출총제가 없어진다고 기업들이 투자에 나서겠냐.”고 강조했다. 하지만 재계는 ‘이중 족쇄’라며 불만이다. 현행 출총제의 적용을 받고 있으면서 환상형 순환출자 고리를 가진 삼성과 현대자동차,SK, 롯데, 한화, 두산, 금호아시아나 등 7개 기업집단의 반발은 더욱 심하다.
기업집단이 아닌 계열사 가운데 2조원 이상 중핵기업에만 출총제를 적용하겠다는 공정위의 설명에 재계는 “중핵기업들은 그룹 전체 출자의 70% 이상을 차지한다.”면서 “사실상 달라지는 게 뭐냐.”고 따졌다.
특히 삼성과 현대차는 기존 순환출자 지분의 해소에 더욱 민감하다. 권 위원장이 앞서 삼성을 전자와 에버랜드, 금융 등으로 쪼개면 되지 않느냐는 발언에 삼성은 아연실색했다. 정부 관계자도 “신규가 아닌 기존 순환출자 지분을 건드리겠다면 현행 출총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때문에 권 부총리는 “출총제 대안은 기업부담을 완화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는 입장을 거듭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정세균 장관도 환상형 순환출자를 규제하는 문제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재계 일각에선 기업의 지배구조와 관련, 권 위원장이 현실보다 법 논리만 내세워 사전규제만 고집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권 부총리의 정책조율 능력에도 문제가 있다. 출총제 대안을 놓고 3개월이 넘도록 태스크포스(TF)가 가동됐는데 지금까지 강 건너 불구경하다가 막판에 대안 없이 반대만 하는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