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품서 부르는 ‘황혼 사랑가’
수정 2006-11-03 00:00
입력 2006-11-03 00:00
김명국기자 daunso@seoul.co.kr
●고국에서 찾은 새 인생, 새 반려자
이날 부부의 인연을 맺은 사할린 동포들은 백용하(70)·최화자(68)씨 부부와 오종학(70)·김영하(71)씨 부부. 어릴 때 일본의 압박을 피해 부모따라 사할린으로 이주해간 한인 2세들이다.
이후 일제가 패망했으나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탄광이나 국영농장, 건설노무자 등으로 일하며 어렵게 지내야 했다. 정부로부터 영주귀국 지원을 받아 지난 2005년 경기도 안산의 요양원에서 만난 사이다.
●“자식은 사할린에 있는데….”
하얀색 연미복을 차려입은 신랑 백용하씨는 “처음 하는 결혼도 아닌데 잠을 잘 못잤어. 그래도 기분은 좋네.”라며 즐거운 표정이었다. 그는 지난해 10월 영주귀국했다. 귀국 후 안산시립요양원에서 최화자씨를 만나 친구처럼 지내다 최씨에게 점점 마음이 끌렸고 청혼했다.
하지만 신부 최씨는 곱게 차려입은 한복이나 화사한 화장에도 불구하고 어두운 표정이었다.30여년 전 남편과 사별한 뒤 고생했던 기억에다 사할린에 두고 온 자식 생각에 “결혼하니까 좋네요.”라면서도 끝내 눈물을 글썽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들과 합동 결혼식을 올린 또 다른 커플은 오히려 신부가 잔뜩 상기돼 있었다. 신부 김영자씨는 “역사의 바퀴가 돌고 돌아 고국 품에 안긴 것도 감사한데 남은 인생 함께 보낼 사람을 만나 새 출발하니 너무 너무 좋다.”고 말했다. 오종학씨에게 청혼을 받은지 반년 만에 족두리를 쓴 그는 “지난 9월에 모국방문단으로 왔던 친지들에게는 남편될 사람을 보여줬는데 아이들에게는 사진만 보여줘서 아쉽다.”면서 “우리가 러시아에 갈 기회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마음 맞춰 살기에도 시간이 부족한데….”
이번 결혼식은 인천사할린동포복지회관의 주최로 열렸다. 한복, 신혼여행 비용 등 결혼에 필요한 것들은 주변의 도움을 받았다. 신접살림은 대한적십자사에서 마련해준 아파트에 차릴 예정이다.60년 넘게 타향살이를 하면서 돌아온 고국은 ‘황혼 결혼’보다는 ‘황혼 이혼’이 많을 정도로 낯선 곳. 그래서 이들은 서로에게 더욱 소중한 인연이다.
결혼식 이후 계획을 묻자 신랑 백씨는 “뭐 살아봐야 아는 거지.”라면서 농담을 한다. 하지만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서로 마음 맞춰 살기에도 시간이 부족한데…. 의지 하면서 잘 살아야지.”
인천 나길회기자
kkirina@
seoul.co.kr
2006-11-03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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