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미국 농업에 관한 환상과 실상/최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

  • 기사 소리로 듣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공유하기
  • 댓글
    0
수정 2006-10-30 00:00
입력 2006-10-30 00:00
요즘 미국의 공항 분위기는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검색을 몇차례 거치면서 미국 출장을 마치고 왔다. 서부에서 중부를 거쳐 동부로 갔는데, 워싱턴에는 거리에나 호텔 로비에나 보안요원들이 쫙 깔려 있었다.

미국 서부의 농민들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관심이 크다. 쌀과 축산물·과일류의 수출이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도 감추지 않았다. 농민들은 요구사항을 농민단체를 통해 정부에 전달해 놓고 결과를 기다리는 듯했다. 만난 김에 우리 쌀의 중요성과 정치적인 민감성을 열심히 설명하니 면전에서는 일단 이해하는 분위기였다.

무상원조되는 밀가루로 수제비를 만들어 끼니를 해결한 경험이 있는 세대에게 미국농업 하면 떠오르는 것은 광활한 토지와 대형 트랙터, 그리고 막연한 두려움일 것 같다. 실상은 어떨까?

미국 농업은 기업농이다? 아니다.210만 군데 농장 중에서 98%가 가족농이다. 미국 농업은 여러 산업 중에서도 백인의 비중이 높은 편에 속하므로 ‘백인들의 가족 비즈니스’라고 볼 수 있다. 참고로 우리 농업은 127만가구의 가족농으로 이루어져 있다.

미국 농장은 모두 대농이다? 아니다. 우리는 경지규모나 가축 사육마릿수로 농가 규모를 분류하지만 미국은 연간 매출액으로 농장을 분류한다. 매출액 25만달러를 기준으로 소농과 대농을 나누는데 92%는 소농이다. 소농은 다시 전업농(24%)과 겸업농(68%)으로, 겸업농은 빈농(11%) 은퇴농(15%) 부업농(42%)으로 분류한다. 겸업농의 70%는 연간 평균 농산물 매출액이 1만달러(약 950만원)에 못 미치는데, 이러한 겸업농의 비율이 증가하는 추세이다.

미국 농산물 대부분은 대농이 생산한다? 그렇다. 소농이 전체 농업생산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8%에 불과하다. 반면에 7%도 안 되는 대농의 생산액 비중은 59%이다. 이러한 대농 집중 현상은 점차 심해진다.1900년 전체 농산물 판매액의 절반을 상위 17%의 농장이 차지했는데, 최근에는 상위 2%로 줄었다. 연 매출액이 100만달러가 넘는 거대 농장은 2만 8000곳인데 이들이 전체 농업생산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42%이다.

미국 농가의 소득은 주로 농업에서 얻는다? 아니다. 농외소득 비중이 90%이다. 대부분의 영세농은, 농업에서는 적자를 보고 이를 농외소득으로 보충한다. 반면에 대농의 농외소득 비중은 20∼30% 수준으로 낮다.

미국 농업의 구조조정은 끝났다? 그렇다. 농업 구조조정은 농가가구수의 감소로 귀결된다. 미국의 전체 농가수는 1935년 700만가구에서 1974년 200만가구 수준으로 감소한 후 최근까지 별 변동이 없다. 구조조정이 30년 전에 끝났다고 보면 된다. 반면 우리나라 농가가구수는 1970년 248만가구를 정점으로 아직도 감소하는 추세이다. 구조조정이 계속되는 것이다. 우리 농업이 아직 ‘개발도상’이라는 근거 중의 하나이다.

미국 영세농은 점차 사라질 것이다? 아니다. 상당기간 존속될 것이다. 미국 영세농은 농외소득 비중이 매우 높고, 정부의 환경보전 관련 보조금과 사회보장 연금 등으로 소득을 보충하기 때문에 시장여건 변화의 영향을 덜 받는다.

미국에는 농업문제가 없다? 있다. 어느 나라나 농업의 문제는 결국 농민의 소득문제이다. 미국은 수출을 늘려야 소득이 유지되는 구조인데, 그것이 여의치 못하면 보조금으로 이를 보충해야 한다. 반면 우리나라같이 고비용 구조를 가진 농산물 수입국은 관세를 통한 국경보호가 어려워지면 생산과 관계없는 직접 보조를 통해 소득을 보전할 필요성이 커진다.

우리 농업의 경쟁 상대는 미국의 효율적인 대농이다. 따라서 고령 영세농 문제를 풀어가며 한편으로는 경쟁력 있는 농가를 육성해 나가는 것이 우리의 과제이다.

최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
2006-10-30 26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
원본 이미지입니다.
손가락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확대해 보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