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 Life] ‘책의 참뜻’ 담지 못한 독후감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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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용 기자
수정 2006-06-24 00:00
입력 2006-06-24 00:00
얼마 전 중학생인 둘째 아이가 독후감 숙제를 해야 한다고 해 필요한지 물어보지도 않고 책을 두 권 사다 준 적이 있다.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였던 것 같다.

퇴근 길에 책을 사들고 들어갔더니 “에이, 아빠 벌써 다 썼어요.”라는 게 아닌가. 어이없어하는 내게 아들놈은 “인터넷에 들어가면 요약된 글이 천지”라며 “책을 언제 다 읽고 독후감을 쓰느냐.”고 천연덕스레 말하는 것이었다.10여분간 훈계를 늘어놓은 뒤 책을 모두 읽고 독후감을 다시 쓰라고 하니 심약한 아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인터넷을 직접 검색해 보니 요약된 글뿐만 아니라 줄거리, 주제, 등장인물의 성격, 느낀 점까지 일목요연하게 나와 있었다.

아예 모범 독후감까지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달려 나왔다.

학교 공부하랴, 학원가랴 바쁜 세상에 쉬운 길(요약글) 놓아두고 굳이 어려운 길(원전)을 택할 아이들이 몇이나 있을까 생각하니, 공연한 트집을 잡은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서점에서도 요즘엔 요약된 글을 묶은 책들이 인기다.‘요약 세계문학전집’이니 ‘독후감 숙제’니 하는 책들이 다. 서너권만 사놓으면 수십명의 위인들과 고전을 ‘섭렵’할 수 있도록 하는 배려다. 대학입시에서 논술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면서 그 준비를 위한 ‘다이제스트 고전’도 쏟아져 나온다.

다이제스트의 장점을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문학이든 철학이든 역사든 전체적인 흐름이나 맥락을 파악할 수 있고, 관심이 가는 책을 골라 읽게 하는 원전에 대한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런 목적으로 요약된 글을 찾는 아이들이 얼마나 될까? 논술시험을 위해 요약집을 달달 외운들, 인터넷에서 독후감 숙제를 수십번 베껴 낸들, 동서고금을 통해 가슴을 울리는 고전의 깊은 맛을 과연 알 수 있을까.

아이들을 겉은 실해 보이나 텅 빈 무처럼 키워선 안 된다. 학교에선 독후감 숙제를 내주기보다, 차라리 1주일에 한두 시간이라도 수업시간을 쪼개 책을 읽게 하는 게 낫겠다. 출판사도 ‘논술준비’니 ‘양서안내’니 하며 요약된 글을 책으로 묶어내는 일은 그만두었으면 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아이들이 책을 멀리하게 함으로써 출판시장에도 해가 되는 일이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2006-06-24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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