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인물로 들여다 본 현대사
김종면 기자
수정 2006-06-17 00:00
입력 2006-06-17 00:00
고르바초프·마티스·에디트 피아프 등 이시대 표상 200人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숲속의 다람쥐에게 먹이를 주는 모습이나 앙리 마티스가 말년에 불편한 몸을 이끌고 종이를 오려 작품을 만드는 모습, 영화 ‘굿 나잇 앤 굿 럭’으로 널리 알려진 미국 저널리즘의 파수꾼 에드워드 머로가 CBS 방송국에서 보도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 같은 것은 좀처럼 보기 힘든 것들이어서 관심을 모은다.
이 책의 저자는 톰 울프·제임스 캐럴 오츠·마야 앤젤로 등 유명 작가들의 초판 서명본을 발행한 출판인이자 작가. 그는 지난 100년을 대표하는 각 분야 인물들을 ‘20세기의 상징인물’로 정리, 짜임새 있는 미니 평전으로 꾸몄다. 한정된 지면 안에 개인의 삶의 에센스를 간결하게 담아냈다. 저자는 등장 인물들의 잘 알려지지 않은 뒷얘기들을 실감나게 들려준다.
프랑스의 국민가수 에디트 피아프. 저자는 피아프의 애절한 삶은 마치 빅토리아 시대의 소설을 읽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길가에서 두 명의 경찰이 지켜보는 가운데 태어난 피아프가 단 하루도 혼자서 잠을 잔 적이 없었다는 사실은 한없는 연민을 자아낸다.20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가 일요일 오후 4시 공연만 고집했고 표가 매진되지 않으면 연주를 하지 않았다는 대목에서는 그의 독특한 성벽과 철저한 프로정신을 읽을 수 있다.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4개의 금메달을 따내 히틀러의 코를 납작하게 해준 미국 육상선수 제시 오언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색다른 감흥으로 다가온다. 그의 얼굴 위로 같은 올림픽 대회에서 금메달을 땄지만 시상대 위에서 고개를 숙여야 했던 손기정 선수의 얼굴이 겹쳐지기 때문이다.
책에 소개된 인물 중에는 우리에게 조금은 낯선 이들도 적지 않다. 인간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있음을 주장한 ‘죽음의 박사(Doctor Death)’ 잭 키보키언,1967년 최초로 심장이식 수술을 시행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외과의사 크리스티안 바너드, 여성비행사로서 태평양과 대서양을 처음 횡단한 아멜리아 이어하트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책은 200명의 아이콘을 선정하기 위해 자문위원회를 구성하고 2년간의 투표와 통계작업을 거쳐 완성됐다. 그러나 20세기를 관통하는 인물을 200명으로 묶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왜 나세르는 포함됐는데 호메이니는 제외됐는가. 백인 홈런왕 베이브 루스는 나오는데 왜 온갖 협박과 야유를 극복하고 그의 기록을 깬 흑인 홈런왕 행크 아론은 빠졌는가.‘인류의 도서관장’으로 불리는 라틴문학의 상징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어떻게 빠질 수 있는가…. 이 책의 해설에서도 지적하고 있듯, 파시즘과 군국주의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레니 리펜슈탈이나 히로히토 일왕을 ‘격랑에 휘말린 불우한 개인’으로만 보는 것도 역사의식의 빈곤이란 비난을 면키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독서상품으로 값어치가 있다. 교양을 위해 역사를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부담없이 읽을 만한 안성맞춤의 책이다. 전2권, 각권 1만 49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2006-06-17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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