産銀 ‘인수합병 ABC’도 몰랐다
이창구 기자
수정 2006-06-15 00:00
입력 2006-06-15 00:00
●산업은행의 능력 도마에
그러나 산은은 공개매수와는 정반대인 경쟁입찰 방식을 취했다. 경쟁입찰은 가격을 많이 써내는 후보의 손을 들어주는 단순한 방식이지만 공개매수는 채권단의 합의, 매수 신고, 소액주주에 대한 주식청약 등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LG카드 매각을 굳이 경쟁입찰로 진행시켜야 했다면 특수목적회사(SPC)를 설립해 채권단 주식을 하나로 모으는 작업을 거쳐야 했다.
산은의 실수(?)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하다. 인수의향서 제출이 마감된 지 2개월이 지나서야 금융감독위원회에 유권해석을 의뢰한 것을 보면 산은이 실제로 규정을 몰랐다고 볼 수 있다. 일각에서는 최대주주이자 주간사로서의 우월적 지위만 믿고 규정을 무시했다고 보기도 한다.
이유가 ‘무능’이든 ‘권한 남용’이든 국내 M&A 주간사 1위라는 산은은 타격을 받게 됐다. 더욱이 LG카드 매각은 외국계 은행도 참여한 국제적인 딜이어서 ‘세계적인 투자은행’을 목표로 하는 산은이 국제적인 망신을 사게 됐다.
S증권 관계자는 “산업은행이 해온 M&A는 대부분 부실기업의 주채권은행으로 단순히 경쟁입찰을 붙여 지분을 파는 것이었다.”면서 “제대로된 M&A 경험은 없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업 공개매수는 물론 인수나 합병을 생각하지 않는 두 기업을 합치는 ‘프라이빗딜’과 같은 M&A의 진수를 보여주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숟가락만 얹는 국제 IB도 문제
M&A 전문가들은 JP모건과 같은 유수의 투자은행(IB)들이 국내 M&A 시장에서 하는 역할은 고작 이름을 빌려주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LG카드 매각도 산은 혼자서 주선해도 되지만 구색을 갖추기 위해 굳이 JP모건을 끌어들였다는 비판이 많다. 한 전문가는 “외국계 IB가 주간사로 참여하지 않으면 공정성 시비를 잠재울 수 없다.”면서 “그 쪽의 인적 구성도 어차피 국내파들이라 능력면에서는 국내 금융기관과 큰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외환은행,LG카드, 대우건설, 까르푸 등 최근 진행된 굵직한 M&A에서 매각 주간사는 물론 인수후보자나 매각주체의 자문도 모두 외국계 IB들이 맡았다. 외국 IB들과 공조해 M&A를 주선할 경우 실무는 대부분 국내 금융회사가 맡고, 외국 IB는 국제적인 명성을 빌려준 대가로 성공보수 등 수수료의 50% 이상을 가져가는 게 일반화됐다.
한편 금감위가 LG카드 매각에 대해 공개매수의 예외를 허용할 경우 부작용이 클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예외를 허용해 채권단만 경영권 프리미엄이 포함된 높은 가격으로 주식을 팔 수 있게 되면 소액주주들의 반발이 불가피하다. 또 이번에 선례를 남기면 앞으로 있을 M&A에서도 공개매수를 피하려는 시도가 봇물을 이룰 게 뻔하다.
한 M&A 전문가는 “금융감독 당국의 생명은 ‘신뢰’”라면서 “금감위가 2003년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에 예외를 적용한 데 이어 이번에도 예외를 인정해 주면 어떤 시장참여자가 금감위를 믿겠느냐.”고 말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2006-06-1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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