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한 표현의 ‘낮은 단계’ 합의
남북 협상에서 두 개의 합의문 채택은 드문 일이다. 하지만, 복수의 합의문이 합의 이행 가능성을 두배로 높여주지 않는다는 데 함정이 숨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경추위 합의문에서는 한강하구 골재채취같은 포괄적인 남북 협력방안을 담으면서 경공업 합의서의 발효시점을 명기했다. 열차시험운행이 성사되는 조건으로 의복·신발·비누 등의 경공업 원자재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시험운행이 늦어질수록 의복 등 원자재가 휴전선을 넘어가는 시간도 지연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일종의 연결고리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회담 전에 이런 전략을 짜놓고 있었다.”고 말했다. 우리 측의 관심은 열차 시험운행에 집중돼 있고, 북측은 경공업 원자재에 탐을 내고 있어 합의점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그래서 이번 합의는 결렬을 막기 위한 ‘낮은 단계’의 합의라는 지적이 나온다.
합의문에서도 이런 징후는 묻어난다. 합의문 어디에도 열차 시험운행이란 용어는 찾아볼 수 없고,‘조건이 조성되는 대로’라는 애매한 표현이 들어있다. 회담 관계자들은 ‘조건’이 바로 열차시험운행과 군사적보장조치를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우리측 수석대표인 박병원 재정경제부 1차관은 이날 새벽 종결회의에서 합의문을 읽으면서 “‘조건이 조성되는데 따라서’에 북측이 관심이 많을 것으로 아는데, 이는 군사적 보장조치가 취해져 열차 시험운행이 이뤄지는 때라는 점을 밝혀둔다.”고 분명히 했다.
열차 시험운행이란 표현을 하지 않은데 대해 정부 당국자는 “상대방을 감정적으로 영향을 주면서 거기(합의문에 명시)까지 밀어붙여서 되겠느냐는 생각”이라고 북측 군부를 자극시키지 않으려는 배려임을 설명했다. 하지만 열차 시험운행이 취소되자 당국자가 공식 브리핑에서 “북측 군부의 책임”이라고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비난을 했던 데 비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북측 대표단이 평양으로 돌아가 합의문을 내놓으면서 북 군부를 설득시킬 수 있느냐는 점도 분명치 않다. 남북이 합의했던 시험운행을 서해상 북방한계선(NLL) 문제 등을 들어 군사적 보장조치를 해주지 않았던 북한 군부였기에 그렇다. 정부는 8월 말까지 시험운행에 기대를 걸고 있다.
서귀포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