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루거 로드맵/이목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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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목희 기자
수정 2006-05-23 00:00
입력 2006-05-23 00:00
지난해 10월 독일의 유력 통신사가 큰 오보를 날렸다. 미 정치인 리처드 루거와 샘 넌이 노벨평화상을 받았다고 긴급보도한 것이다. 그러나 잠시 후 공식발표를 통해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엘바라데이 IAEA 사무총장이 수상자로 확정되었다. 부시 대통령이 속한 미 공화당은 매파로 덮여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런 가운데 중도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이가 루거 상원 외교위원장이다. 지구촌의 분쟁 해결을 위한 합리적 방안을 잇따라 제시해 평화상 물망에 여러차례 올랐으니 오보라도 그럴듯했던 셈이다.

루거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러시아의 핵무기 해체를 지원하는 CTR프로그램이었다. 미 국방예산의 0.1%를 들여 러시아 핵탄두 6760기를 폐기할 수 있는 계획이라고 하니 대단히 효율적이다. 북핵 해결 방식의 하나로 ‘리비아식 해법’이 거론된다. 외교·경제 제재에 눌린 리비아가 먼저 핵을 포기하고 나중에 미국이 보상조치를 취하는 방식이었다. 리비아는 테러지원국 해제 이행이 늦어지자 “속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루거는 리비아로 날아가 약속이행을 다짐했고, 얼마전 미국은 리비아와 국교정상화 조치를 취했다.

루거가 이번에는 ‘북한관계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북한이 핵을 포함한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하는 것을 전제로 단계별 보상안을 법으로 명문화하는 내용이다. 대북 안전보장과 경제·에너지 지원, 관계정상화에 이은 평화협정 논의까지 담고 있다. 북·미는 지금 선후(先後)를 놓고 평행선이다.“핵을 포기해야 돕겠다.”(미)와 “행동 대 행동으로 주고받자.”(북) 북한과 리비아는 차이가 있다. 한국·중국이 있어 북한은 외교·경제 제재에 쉽게 굴복하지 않는다. 핵개발 단계도 리비아보다 훨씬 앞선다. 때문에 리비아식보다는 법으로 보상약속을 함으로써 ‘행동 대 행동’요구를 일부 수용하는 효과를 보자는 게 루거 로드맵의 골자다.

러시아 핵폐기비용 지원 조치를 북한에 적용하자는 주장은 루거 제안과 연관이 있다. 주변국이 경제지원과 함께 체제안전을 보장하고 당사국은 핵을 폐기하는 우크라이나 방식이 한반도에서 현실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국 정부·국회는 루거와 같은 합리주의자와 연대를 강화해 미국의 대외정책이 유연해지도록 더 노력해야 한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2006-05-23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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