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Life] 출판상업주의와 ‘아이비리그 마케팅’

  • 기사 소리로 듣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공유하기
  • 댓글
    0
김종면 기자
수정 2006-05-06 00:00
입력 2006-05-06 00:00
한국의 학력주의 사회에서 교육은 이미 ‘사회이동’의 수단을 넘어 ‘계급재생산’의 통로가 된지 오래다. 오늘날 탈신분 사회에서 사회적 지위를 보장해주는 매개체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학력, 그 중에서도 단연 명문대 졸업 간판일 것이다. 그렇기에 너나없이 유명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몸부림치는 ‘국가적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국내 대학은 고사하고 최근 쏟아져 나오고 있는 아이비리그 주제 관련 책들만 봐도 숨막히는 학력경쟁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쌍둥이 형제 하버드를 쏘다’ ‘한국토종엄마의 하버드 프로젝트’ ‘공부 9단 오기 10단’ ‘공부불패 예리의 게으른 공부법’ 등 그 제목도 퍽이나 자극적이다.

지난주 시내 한 음식점에서는 출판 간담회가 열렸다. 주인공은 ‘섬기는 부모가 자녀를 큰사람으로 키운다’(랜덤하우스중앙)라는 책을 낸 전혜성(77) 동암문화연구소(ERI)이사장. 그는 이 책에서 자녀를 오센틱 리더(authentic leader), 즉 진정한 지도자로 키우기 위한 일곱 가지 덕목을 제시했다.‘뚜렷한 목적과 열정을 가르쳐라.’‘덕이 재주를 앞서야 한다.’‘진실한 마음을 얻는 대인관계의 힘을 경험하게 하라.’는 등 그야말로 새겨들어야 할 ‘공자님’ 말씀이다.

그러나 그의 말은 어디까지나 원칙적인 도덕론 혹은 당위론을 피력하고 있을 뿐이다. 학교 붕괴로 대변되는 우리의 무기력한 교육 현실이나 ‘학벌의 덫’에 갇혀 꿈을 잃고 신음하는 우리의 ‘교육 꽃봉오리’들을 고려한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우리 교육 실정에 맞지 않는 얘기 아니냐.”는 질문에 “수십년 동안 외국에서 살아온 사람이 어떻게 한국의 교육현실을 알 수 있느냐. 아무 것도 모른다.”고 잘라 말했다. 물론 그런 ‘한가한’ 얘기도 한가한 대로 소용이 닿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6자녀 모두 하버드와 예일대 졸업, 한 가족이 11개의 박사학위 취득!”이라는 광고문구가 말해주듯, 이 책은 한 마디로 아이비리그 출신 성공가정을 내세운 ‘팔기 위한’ 책이다. 출판사측은 이 책에 사활이라도 건 듯, 출간에 맞춰 대대적인 홍보공세를 폈다. 신문들은 지면을 도배하다시피 했다. 진정한 뉴스가치를 따지기보다는 일단 눈길부터 끌고 보자는 언론의 무분별한 센세이셔널리즘과 ‘스타 마케팅’ 덕분인지 책은 발간 사흘 만에 3쇄를 찍었다고 한다. 베스트셀러란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인가.‘아이비리그 마케팅’은 언제까지 약발이 먹힐까. 참다운 책의 가치가 ‘책외적인’ 요소에 의해 좌우되는 현실, 거대 출판사의 상업주의에 멍들어가는 출판동네, 책 기사조차 널뛰기식 ‘추종보도’를 일삼는 언론의 행태….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진실인지 도무지 헷갈리는, 그런 부박(浮薄)한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2006-05-06 11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
원본 이미지입니다.
손가락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확대해 보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