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청계천, 그때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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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6-04-12 00:00
입력 2006-04-12 00:00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중반까지 한국에서 봉사활동을 펼친 일본 사회운동가 노무라 모토유키(野村墓之·75)가 찍은 70년대 초 서울 청계천과 천변 주민들의 사진이 공개됐다. 청계천 하류 판자촌 주민들의 모습이 담긴 880여점의 사진은 서울시에 기증되어 13일부터 23일까지 성동구 마장동 청계천문화관에서 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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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70년대 서울 청계천에 즐비하던 판잣집은 가난한 도시서민의 생활단면이다.
60~70년대 서울 청계천에 즐비하던 판잣집은 가난한 도시서민의 생활단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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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근대화에 밀려난 청계천 판자촌이지만 그곳에 살고 있는 아이들의 표정은 밝다.
도시 근대화에 밀려난 청계천 판자촌이지만 그곳에 살고 있는 아이들의 표정은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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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곶이 다리 부근의 소녀. 멀리 한양대부속병원의 모습이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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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활빈교회. 청계천 빈민들은 교회를 통해서 절망을 개척하여 희망을 찾으려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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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수도의 혜택을 받지 못했던 청계천 주민들. 그래도 펌프로 끌어올린 지하수가 사진속 모녀에게는 오아시스처럼 보인다.
상수도의 혜택을 받지 못했던 청계천 주민들. 그래도 펌프로 끌어올린 지하수가 사진속 모녀에게는 오아시스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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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변 판자촌의 한 개척교회에서 주민이 간절한 기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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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잣집 벽면에 붙일 종이를 말리는 모습. 신문지가 주류였던 당시 형편에 비하면 고급이다.
판잣집 벽면에 붙일 종이를 말리는 모습. 신문지가 주류였던 당시 형편에 비하면 고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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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자의 사랑이야기’라는 극장포스터. 당시 청계천과 잘 어울리는 문화코드이다.
‘춘자의 사랑이야기’라는 극장포스터. 당시 청계천과 잘 어울리는 문화코드이다.
2006-04-12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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