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베팅의 계절’
수정 2006-03-16 00:00
입력 2006-03-16 00:00
김 회장과 강 행장은 이 시각 최고경영자(CEO)로서 외로운 결단을 해야 했다. 입찰가격을 직접 써야 했던 것. 비밀리에 운영된 실사팀이 한 달여에 걸친 작업 끝에 적정 인수가격의 범위를 산출했고, 이사회에서 대략적인 논의가 있었지만 결국 최종 입찰가 결정은 CEO의 몫이었다.
‘이 가격이면 우선협상자로 선택될 수 있을 것인가. 경쟁 회사는 얼마를 써낼까….’평생을 은행에서 보낸 두 CEO의 머릿속에서는 복잡한 계산이 빠르게 진행됐다.
금융권의 판도를 뒤바꿀 외환은행과 LG카드 매각이 본궤도에 오르면서 국내 4대 금융회사 CEO들이 ‘결단의 봄’을 맞고 있다. 물론 인수·합병(M&A) 작업은 실무진과 자문사가 협의해 진행하고, 이사회의 논의도 거쳐야 하지만 입찰여부 및 입찰가격 결정은 전적으로 CEO들에게 달려 있다.
외환은행을 놓고는 김 회장과 강 행장이 현재 숨막히는 대결을 펼치고 있다. 또 국내 최대 신용카드사인 LG카드의 새 주인 자리를 놓고서는 신한금융지주의 라응찬 회장과 우리금융그룹 황영기 회장이 결전을 앞두고 있다.
라응찬 회장과 김승유 회장은 신한은행장과 하나은행장을 거쳐 현재 두 금융그룹의 지주사 회장으로 각각 17년,11년째 ‘권좌’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강정원 행장과 황영기 회장은 내년에 임기가 만료되는 3년 임기의 전문 경영인이다. 후발은행을 직접 키워 ‘4강의 반열’에 올려 놓은 노련한 라 회장과 김 회장, 재임중에 리딩뱅크의 지휘봉을 거머쥐려는 야망을 품은 강 행장과 황 회장의 물고 물리는 ‘승부’에 금융권의 촉각이 집중됐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김승유, 강정원의 숨막히는 대결
외환은행 입찰에서 론스타에 제시한 가격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가격을 직접 써낸 김 회장과 강 행장뿐이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가격 결정 며칠 전부터 그룹에 함구령이 내려졌으며, 김 회장과 핵심 인력 2∼3명만이 가격 산출에 참여했고, 최종 결정은 김 회장 혼자 마지막 순간에 내렸다.”고 전했다. 국민은행 관계자 역시 “강 행장이 가격 결정의 전권을 행사했기 때문에 아무도 얼마를 써냈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보람은행과 서울은행, 대투증권 등을 잇따라 인수한 김 회장은 이번에도 국민연금 등 굵직한 국내 투자자를 끌어들이는 수완을 발휘했다. 강 행장은 이번 인수전을 통해 덩치만 컸던 국민은행을 명실상부한 ‘리딩뱅크’로 각인시켰다.
●라응찬과 황영기의 선택은?
오는 27일 매각공고가 발표될 LG카드를 잡으려는 신한지주와 우리금융의 경쟁도 후끈 달아올랐다. 신한지주와 우리금융은 각각 UBS와 CSFB를 인수자문 주간사로 선정하고 인수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카드시장 점유율 20%를 차지하고, 지난해 1조 3600여억원의 순이익을 올린 LG카드를 누가 가져가느냐에 따라 두 금융그룹의 운명도 갈린다.
조흥은행을 인수해 신한은행을 2위 은행으로 발전시킨 라 회장은 LG카드까지 지주사의 우산에 편입시켜 가장 강력한 금융그룹을 형성하고 명예롭게 은퇴할 꿈을 꾸고 있는 듯하다.‘토종은행론’을 주창하며 우리은행을 가장 공격적인 은행으로 변신시킨 황 회장 역시 공적자금이 투입된 금융회사라는 한계를 뛰어넘어 LG카드를 인수해 우리은행 역사상 가장 성공한 CEO로 기억되겠다는 각오다.
2006-03-16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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