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한 권의 책이었다/소피 카사뉴-브루케 지음

  • 기사 소리로 듣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공유하기
  • 댓글
    0
김종면 기자
수정 2006-03-04 00:00
입력 2006-03-04 00:00
15세기 서양에서 인쇄술이 발명되기 이전, 책을 읽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다른 수서본(手書本)을 베껴 쓰는 것이었다. 글씨를 베껴 쓰는 행위인 필사 혹은 필경(筆耕)은 그야말로 밭을 가는 것과 같은 고역이었다. 필경사들은 ‘스크립토리움’이라 불리는 공방에 모여 앉아 한평생 종이 위에 밭을 갈고 또 갈았다. 그렇게 해봤자 고작 몇 십권의 책을 만들 수 있을 뿐이었다. 책 한 권을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은 엄청나 중세 말 보통 규모 장원의 연간 소득과 맞먹었다. 거만(巨萬)의 부를 쌓은 귀족들만이 필경사로 하여금 갖고 싶은 책을 베끼도록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필경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참회의 행위로 여겨졌다. 베낀 쪽 수와 행수, 글자 수를 세어 연옥에서 보낼 햇수가 얼마나 줄어들었는가를 헤아릴 정도였다. 요컨대 중세는 책에 바친 열정으로 문화의 꽃을 피운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상은 한 권의 책이었다’(소피 카사뉴-브루케 지음, 최애리 옮김, 마티 펴냄)는 유명 수서본과 200여점의 채색화를 통해 중세 특유의 책 문명을 살핀다. 낡고 바랜 양피지 위에 한자 한자 그림처럼 써내려간 필경사들의 글씨는 중세가 왜 ‘책의 시대’라 불리는지 그 이유를 짐작케 한다.

이 책에서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채식(彩飾)문화에 관한 것이다. 앙뤼미뉘르(enluminure)라 불린 채식은 수서본에 들어있는 장식, 즉 삽화를 가리킨다. 신앙서적이든 세속서적이든 채식은 중세 책의 독특한 면모다.

수서본의 삽화는 어쩌다 특별전시회라도 열리지 않으면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중요 문화재다. 이 책은 비록 지상으로나마 그 같은 수서본의 진면목을 오롯이 보여준다.1만 8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2006-03-04 14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
원본 이미지입니다.
손가락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확대해 보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