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라운지] 오관영 前배구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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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규 기자
수정 2006-02-14 00:00
입력 2006-02-14 00:00
지난 11일 프로배구 올스타전이 열린 서울올림픽공원 제2체육관. 중계석에 오관영(68)씨가 앉았다. 하루도 틀리지 않고 꼭 8년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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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관영 前배구 해설위원
오관영 前배구 해설위원
배구 좀 안다 싶은 팬들은 그 이름 석 자를 모를 리 없다. 미사여구를 줄줄이 늘어놓지도 않았고, 재치있는 입담도 없었지만 올드팬들은 쉰소리나 다름없는 카랑카랑한 그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라디오와 TV에 눈과 귀를 기울이며 백구 코트를 그려보곤 했었다.

순수 서울산인 그가 용산중 3년때 인연을 맺은 배구는 지난 1998년 방송 마이크를 놓을 때까지 45년 동안 그의 삶 자체였다.

그런 그가 목사로 변신한 걸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반평생 이상 ‘배구쟁이’로 살아왔지만 손엔 기록지 대신 성경책이 들려 있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면서 “언젠가 운명처럼 닥쳐오리라던 길이 환갑을 훌쩍 넘기고서야 활짝 열렸을 뿐”이라고 넘긴다.

1963년 경희대 체대를 졸업한 오관영은 곧바로 서울 환일고 체육교사로 부임했다. 대학원 공부까지 겸하던 68년 나이는 열 살이나 많지만 대학원 1년 후배인 김재길 당시 동양방송(TBC) PD를 만나 해설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같은 해 3월에 열린 TBC배 고교대회가 그의 첫 무대. 그러나 해설 도중 “수준이 낮은 경기”라고 일갈했다가 광고시간에 PD에게 불려가 “이 대회가 어디 주최인 줄 알고 그런 말을 하느냐.”며 혼쭐이 날 만큼 그는 햇병아리였다.

세월만큼 경륜도 쌓였다. 방송 도중 갑자기 광고가 빠지는 통에 준비 못한 해설을 3분 넘게 늘어놓다 주머니를 뒤집어 탁탁 털어보이며 “(더 할 말이) 없어, 없어”라고 PD에게 신호를 보낸 뒤 ‘주머니 털기’는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14년간의 교직 생활을 접은 오관영은 1979년 고려증권 계열사인 모 제약회사 총무부장을 시작으로 이후 98년까지 7개사를 두루 거치며 사장에까지 올랐다.

당시 이강학 대연각그룹 회장의 후원을 업고 승진 가도를 달리던 83년엔 고려증권 상무에 올라 고려증권 배구팀을 창단했다.

장윤창 이경석 정의탁 유중탁 등 걸출한 스타로 현대자동차서비스와 함께 80∼90년대 코트를 호령한 남자배구의 명문.



오씨의 해설은 쓴소리 많기로 유명했다. 그러나 자신의 자식이나 다름없는 추억의 올드스타들이 벌인 15분 동안의 이날 경기에서만큼은 달랐다. 그는 “할 말은 많지만 일단 떠난 사람이 판을 깰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말을 아꼈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2006-02-14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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