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최태영과 이병도/ 이용원 논설위원
이용원 기자
수정 2005-12-06 00:00
입력 2005-12-06 00:00
최 박사가 뒤늦게 상고사 연구에 뛰어든 까닭은 ‘식민사학을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나의 세대까지만 해도 단군과 고조선을 의심한 일은 없다.”고 했다. 자신이 한국인이고 최씨인 것처럼 단군이란 존재는 그에게 논란의 대상이 아니라 원형질 자체였던 것이다. 아울러 그의 상고사 연구 선언은 수십년 지기(知己)인 두계 이병도(1896∼1989)에 대한 선전포고이기도 했다.
일본 유학시절에 처음 만난 두 사람은 광복후 서울대에서 교수로 함께 있으면서 더욱 가까워졌다. 법대 학장과 사학과 교수로 선 자리는 달랐지만 존경과 우정을 나누었다. 최 박사가 법학자로서 마지막 남긴 역저 ‘서양 법철학의 역사적 배경’(1977년간)의 서문을 두계가 써줄 정도였다. 하지만 상고사에 관한 한 최 박사의 두계 비판은 매서웠다.102세에 출간한 저서 ‘한국 고대사를 생각한다’에서 최 박사는 일제강점기에 조선사편수회를 이끈 일본학자 이마니시 류를 “학문은 보잘것없는 자가 편찬자가 된 것을 기화로 천하 대담한 짓을 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병도는 그런 이마니시와 배짱이 맞아 조선인 정신 빼는 역할을 맡음으로써 천추에 욕먹을 짓을 했다.”고 표현할 정도였다.
그래도 두 사람의 우정은 변치 않았고 이를 토대로 최 박사는 말년의 두계에게 단군과 고조선의 존재를 인정케 했다. 그 성과는, 둘이 1989년 ‘한국 상고사 입문’을 함께 써 발표하는 것으로 가시화했다. 최 박사는, 두계도 결국 단군을 인정했는데 후학들은 아직도 실증주의에 매달려 단군을 알지 못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제 최 박사마저 떠났으니 어찌 해야 단군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답답하기만 하다.
이용원 논설위원 ywyi@seoul.co.kr
2005-12-06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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